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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르포] 충청 지역 민심 탐방…젊은 층은 문재인·안희정·이재명, 노년층은 반기문에 ‘호감’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환으로 ‘대선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반 전 총장은 1월12일 귀국하며 대선 출마 의지를 기정사실화했다. 그의 합류로 인해 ‘나올 만한 주자’는 거의 드러났다. 이번 대선에서는 여느 때보다 ‘충청 파워’가 거세질 전망이다. ‘충청대망론’이 실현될 것이라는 정치권 안팎의 기대감도 상당하다. 현재 거론되는 충청 출신 대선 주자는 모두 네 명으로, 반 전 총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인제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다. 이 중에서도 반 전 총장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함께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힌다. 안 지사 역시 민주당 내에서 굉장한 잠재력을 지닌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시사저널은 1월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 동안 대전과 충·남북 지역을 찾아, 이들이 과연 ‘충청대망론’에 부응할 수 있을지를 진단해 봤다.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정국의 판세를 갈랐던 충청 지역 민심은 여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시사저널이 충청의 민심을 들어봤다. 1월17일 찾은 대전 중앙시장
1월20일 오후 충청북도 천안시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고성준

■ 대전 “충청도라고 다 똑같진 않아”

 “여기는 여론조사 기관도 두 손 두 발 들고 돌아가는 곳이에요.” 1월17일 만난 대전 지역 정치인의 평가다.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지역 특성 때문에 민심을 예측하기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또 다른 지역 인사는 “충청 사람들은 여우나 마찬가지”라며 “지금 속내를 듣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전 시내에서 만난 시민 대부분은 지지하는 대선후보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해 줄 말이 없다”거나 “결정하지 못했다”며 신중함을 보였다. 기다림 끝에 얻은 답변에선 세대 간 차이가 극명히 나타났다. 귀국 후 충청권 전반에 불어닥칠 것이라 예상한 반풍(潘風·반기문 바람)도 미풍(微風)에 그쳤다. 20~40대는 대부분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동시에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해선 날카롭게 비판했다. 충남대학교에 재학 중인 윤지수씨(24)는 “도덕성을 따져볼 때 문 전 대표가 가장 적합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 전 총장은 기회주의적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학교 김경완씨(27) 역시 “현 정부 비리를 모두 밝혀내려면 문 전 대표가 당선돼야 한다”면서 “유엔 사무총장을 했다고 자동적으로 대통령감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민주당 대전시당 관계자는 “생각보다 반 전 총장 위세를 크게 체감하지 않는다”며 “대전도 촛불민심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고 밝혔다.  

노년층에 부는 반풍(潘風)

 젊은 층 사이에선 같은 충청 기반인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호감도가 반 전 총장보다 높았다. 그러면서도 안 지사는 이번 대선이 아닌 다음 대선 주자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하는 30대 후반 김승덕씨는 “안 지사의 임팩트가 아직은 약한 것 같다”며 “몇 년 더 준비한 후 출마한다면 그땐 지지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대전시당 박종범 사무처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불었던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에 비하면 반풍은 많이 약한 상태”라며 “안 지사가 반풍을 일부 차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노년층에선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 의사가 많았다. 대전에서 30년 거주한 오계분씨(87)는 “새누리당만 계속 뽑아왔는데 이번엔 마땅한 후보가 없으니 반기문밖에 더 있느냐”고 말했다. 지역 경로당에서 만난 정아무개씨(75)는 “아무래도 외교는 잘하지 않겠느냐”면서 “어쨌든 문재인은 아니다. 소신이 없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대전시당 박희조 사무처장은 “지금은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가 일부에서만 나타나지만, 좌파 정권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보수 지지자들이 막판에 반 전 총장 쪽으로 집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1월18일 오후 충청북도 음성군 반기문 생가 마을에 위치한 반기문기념관. 반기문기념관에 시민들이 적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언론이 주목하는 ‘충청대망론’에 대해 대전 민심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중앙시장 상인회 김영구 사무처장은 “단어 자체가 거창하고 괜스레 지역 갈등을 낳는 것 같아 오히려 부담스럽다. 지역보단 인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한 관계자 역시 “충청 프레임에 갇히는 것 같아 충청 출신 후보들조차 표현을 꺼린다”고 얘기했다. 반 전 총장의 고향인 충북과 명확히 선을 긋는 이들도 있었다. 택시기사 나기준씨(60)는 “과거 충남이 자민련 김종필 후보를 밀 때부터 충북과 대전·충남은 물과 기름처럼 단합이 잘 안 됐다”면서 “지금 충북이 반기문을 민다고 해서 대전·충남도 당연히 함께할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라고 말했다.  

​ ‘반기문 거점’ 충북, 호불호 엇갈려

 

“우리한테 묻지 말아요. 정말 조심스러워.”

 1월18일 충북 음성에 있는 반기문 생가 마을의 한 주민이 한 말이다. 광주 반씨 집성촌인 이곳은 아직도 일족 20여 명이 살고 있다. 반 전 총장과 가장 가까운 친척은 6촌 관계다. 이곳에 있는 반기문기념관 관계자 최아무개씨(60)는 “반 전 총장이 6살 때까지만 이곳에 살았기 때문에 아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반 전 총장과 관련된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한 한 친척은 “기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묻는 데다 최근에 자꾸 이상한 얘기만 나오는 터라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주변 분위기는 반기문기념관에서 일하는 최씨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곳 근방의 여론은 반 전 총장의 당선”이라며 “최근 풍수학자들의 방문이 늘었다. 다들 ‘큰일 한 번 더 하시겠다’라고들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말 잘못했다가 반 전 총장에게 누가 될까봐 쉬쉬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충북도청이 있는 청주 육거리시장에서는 반 전 총장에 대한 호불호(好不理想)가 엇갈렸다. 대형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아무개씨(여·67)는 “반기문도 박근혜랑 똑같아 보인다”며 “박근혜한테 배신당하는 기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꼭 사람 보고 뽑을 것”이라며 지지하는 후보를 따로 밝히지는 않았다. 육거리시장 인근에 있는 식당 주인인 황순영씨(여·70)는 반 전 총장을 지지했다. 그는 “요즘 사태는 야당의 조작인 걸 다 안다”며 “능력 있는 충청 인사인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을 해야 모두 다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젊은 층에서는 반 전 총장에 대한 호감을 찾기 힘들었다. 청주법원 근처에서 만난 안아무개씨(33)는 “주변에서는 거의 다 문재인 아니면 이재명, 안희정을 지지한다”며 “반 전 총장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낫다는 친구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원 김아무개씨(여·25)는 “요즘 상황이 심각해서 정치 얘기를 많이 하는데, 반 전 총장이 리더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심경화씨(여·55)는 “나이 든 사람은 반 전 총장을 지지하고, 젊은 사람들은 문 전 대표나 이재명 시장, 안 지사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1월18일 대전 유성구 아파트단지 경로당의 노인이 기자와 대화하고 있다.(왼쪽) / 충청북도 청주시 육거리 시장(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고성준

​ 충남 “안희정 지사가 더 잘됐으면”

 “우리 같은 보수인사가 봐도 안희정은 괜찮은 것 같아. 사람이 예의 바르고 정치권에 물들지도 않았잖아.” 1월19일 취재진이 만난 충남 지역의 한 보수단체 회장 출신이 한 말이다. 안 지사의 장점으로 ‘젊음’과 ‘예의 바름’을 꼽은 그는 “주변을 보면 반 전 총장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지만, 안 지사도 굉장히 좋은 인물”이라며 “충청 지역이 아니라 현재 가장 훌륭한 후보 두 명”이라고 치켜세웠다. 이 인사는 “젊은 층이 문 전 대표나 안 지사를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그들은 투표를 안 하지 않느냐”며 “노년층은 100% 투표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 전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충남 최대 도시인 천안에서는 문 전 대표에 대한 호감이 대부분인 가운데 안 지사와 이 시장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가 나왔다. 천안시 두정동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는 권아무개씨(여·23)는 “개인적으로 문 전 대표와 안 지사를 좋아한다. 문 전 대표는 강직할 것 같아서 좋고, 안 지사는 젊고 똑똑한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두정동 먹자골목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37)는 “아직 개인적으로 후보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반 전 총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시민에게 물어도 답변은 비슷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천안의 경우, 외지에서 온 시민 비율이 상당히 높아 지역색이 없다고 봐야 한다. 천안 외곽 지역 노년층에서는 반 전 총장에 대한 지지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다수 시민은 야당 후보들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충청 지역 대선후보인 정운찬 전 총리와 이인제 전 최고위원에 대한 호감은 아직 찾기 힘들었다. 성정동에서 만난 식당 사장 황아무개씨(54)는 “정 전 총리는 똑똑하긴 한데 전혀 인기가 없고, 이 전 최고위원은 이제 너무 구시대 인물 아닌가 싶다. 젊고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또 나오는 건 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청주에서 만난 회사원 공아무개씨(43) 역시 “정 전 총리가 대선에 나오는지 아직 몰랐고, 이 전 최고위원은 이제 정치를 그만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젊은 층 “꼭 투표하겠다”

 지지하는 후보는 각각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탄핵 정국을 지켜보며 정치권에 느낀 회의감은 같았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시장에서 우산가게를 하는 이아무개씨(59)는 “누가 당선돼도 무너진 경제를 살려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은범씨(55)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며 “요즘 승객들마다 정치 욕뿐이다”고 전했다. 지지 후보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답한 시민이 대다수였다. 정치권에 대한 분노와 좌절이 한편으론 투표 의지를 강하게 하고 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65)는 “뽑을 사람 하나 없지만 그래도 무조건 투표장엔 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 층의 투표 의지는 더욱 확고했다. 직장인 최아무개씨(34)는 “한 번도 투표하러 가지 않았는데 이번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 표 행사할 것”이라면서 “나라가 청년 무서운 걸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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