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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 동쪽으로 롱아일랜드가 이어져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긴 섬’인데 교량과 터널로 연결돼 섬 같은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대서양을 향해 200여 km 길게 뻗은 땅에는 멋진 해변과 녹지가 그득합니다. 뉴욕의 관문 케네디 공항(JFK)도 여기에 위치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려는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은 북쪽 해안 오이스터 베이 근처입니다. 맨해튼에서 1시간 남짓한 곳이지요. 본인은 2003년부터 4년간 한 언론사 특파원으로, 현지판 제작책임자로 뉴욕에 머물렀습니다.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뉴욕에 들르면 잊지 않고 찾아가는 곳이 사가모어 힐입니다. 미국 제26대 대통령(1901~1909) 테오도어 루스벨트(TD)가 자라났고 재임 중에는 여름철 집무처(하계 백악관)로 사용하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드넓은 농장 언덕 위에 지어진 130년 된 빅토리아풍 3층 저택 등은 지금도 잘 보존돼 있고 기념박물관도 건립돼 추모·관광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습니다. 
사가모어 힐(Sagamore Hill) ⓒ 연합뉴스


동네 공원도 아닌 곳을 거듭 찾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의 숨결과 많은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듯이 TD는 막강 미국의 초석을 깐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입니다. 미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합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러시모어 산에 조각된 게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한국인에겐 좋은 인상을 주는 미국 대통령은 아닙니다. 100년 전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길을 터준 이로 기억되는 탓입니다. 그는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제27대 대통령)을 일본에 보내 당시 총리 가쓰라 다로와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을 맺도록 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해, 미국은 필리핀에 대해 지배권을 인정한 밀약은 이내 조선의 주권을 뺏는 을사늑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로서는 섭섭한 인물이지만 그러나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과, 당시 일본과 대한제국의 행보를 떠올리면 그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우선 그가 살던 저택 거실의 진열품들이 원망의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외국 왕·국가원수 등이 보내온 것이라서 대단한 명품들이지만 일본 쇼군의 갑옷과 일본도(刀)는 이들을 압도합니다. 도자기 등 다른 일왕 선물도 많습니다. 1858년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일본이 태평양으로 맞댄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력투구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1882년 미국과 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은 이듬해 민영익 등의 사절단을 미국에 보낸 게 고작입니다. 조선이 ‘미국 구경’이나 할 때 일본은 조선 8도를 통째로 먹기 위한 구상을 착착 진행했단 말입니다. 참, 사가모어 힐 저택 현관에는 미·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일본이 심어 놓은 왕벚꽃 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서 있습니다. 지난해 연말 포함 네 차례 뉴욕을 방문하면서 사가모어 힐을 매번 찾은 소이는 우리 안보 정세가 구한말 못지않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가속화 속에 미·일 간 군사협력체제가 공고하게 되고 한국의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미·일과 중국, 한국과 중국 간 긴장·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은 범상치 않습니다. 최근엔 중국이 노골적으로 대한(對韓) 압력을 가중시키고 덩달아 여야, 보수·진보 진영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등 한국 국론분열상은 도를 더하는 중입니다. 우리가 자부하는 경제적 성취가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든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게 한갓 상상이 아님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아니 경제뿐 아니라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사태마저 있을 수 없는 가상이 아님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사가모어 힐 방문을 적극 권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처지와 나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곱씹기 바랍니다. 자녀 동반 일반인 관광이 바람직함은 물론입니다. <사가모어 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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