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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체험 전제로 한 ‘아동쇼핑’, 비밀입양으로 팔아넘기기도

우리나라의 세계 경제대국 10위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고여 있다. 해외로 입양된 전쟁고아들도 여기에 속한다. 1953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17만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산업화가 진행되고 전쟁과 절대 빈곤이 없어진 뒤에도 해외 입양은 계속됐다. 1970~80년대에만 전체 입양의 67%인 11만2500여 명이 해외로 보내졌다. 1980년대에는 ‘아동수출 1위’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재외동포 700만 명 중 3% 정도가 입양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양 산업’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입양이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입양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친부모와 양부모의 합의 입양, 입양기관의 입양 과정에서 벌어지는 ‘입양체험’ ‘아동쇼핑’도 문제다. 또 ‘비밀입양’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이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있으며, 여기에 ‘입양 브로커’까지 판치고 있다. 
11월14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 광장에 설치된 학대피해아동 이미지 위에서 관내 어린이집 아동들이 아동학대 반대를 위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곳곳에 구멍 뚫린 입양제도

 지난 9월 경기도 포천에서는 양부모가 입양한 6세 딸을 학대해 사망하게 했다. 이들은 딸이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온몸을 투명 테이프로 묶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은 채 17시간을 방치했다. 양부모는 딸이 숨지자 시신을 들고 야산으로 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양부모의 딸 입양은 친모와의 합의에 의해 이뤄졌다. 양모가 친모로부터 “남편과 이혼해 딸을 키우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는 합의하에 입양이 결정된 것이다. 현행 민법은 개인 간 합의 입양도 허용하고 있다. 문제는 친부모와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양부모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포천 사건의 경우 양부가 전과 10범인데도 법원은 이를 간과했다. 가정방문 등 사후 관리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법원의 입양허가 결정 후 3년 만에 아동은 양부모에게 끔찍하게 살해됐다. 시민단체는 “아동인권에 구멍 뚫린 민법이 입양 아동을 사망케 했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건은 개인 간 합의 입양의 제도적 허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입양기관을 통한 입양 절차는 ‘입양특례법’에 따라 약 10단계의 검증 절차를 거치고 20여 가지의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입양 이후에도 1년에 수차례 사회복지사 등이 불시에 가정을 방문해 아동 상태를 점검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이른바 ‘입양체험’ ‘아동쇼핑’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10월29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입양아인 4살 은비(여)가 심정지로 뇌사판정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숨졌다. 양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것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런데 은비의 입양 과정을 보면 혀가 내둘러진다. 은비 엄마는 갓 17살 된 미혼모였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닐 나이에 동생 같은 딸을 낳았다. 중졸 학력이 전부였던 엄마는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 사이 사귀던 남학생과 아이를 갖게 됐다. 아이를 키울 수 없었던 어린 엄마는 딸의 입양을 결정하고 2014년 6월 서울 소재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입양원에 입소시켰다. 두 달 후 은비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에 있는 한 가정으로 입양을 전제로 위탁된다. 현행법에는 법원의 입양 허가 결정 후 아동을 입양가정에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은비는 법원의 허가를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예비 입양가정에 보내졌다. 양엄마가 될 위탁모는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증상이 있었다. 하루에 한 끼 밥만 줬고, 화가 나면 은비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변기에 머리를 감기는 등 학대했다. 그리고 양부모는 은비가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며 파양(罷養) 절차를 밟았다.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입양체험’을 한다고 데려다가 심한 학대를 하고는 아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버린 것이다. 은비는 4개월 만에 입양원으로 돌아왔다. 두 달 후인 지난해 7월말 이번에는 대구에 있는 한 가정으로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양을 전제로 한 ‘가정위탁(입양체험)’을 갔다. 양부모는 이곳 입양원에서 6명의 아이들을 입양했으며, 은비를 입양할 당시에도 두 살 어린 남자 아이를 함께 입양했다. 은비는 이곳에서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학대를 당했다. 지난 4월 저나트륨혈증으로 대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이 증상에 대해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물고문을 당했을 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은비의 상태를 살펴보다 온몸에 멍과 화상 자국이 발견되자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은 의료진이 상황을 오인해 신고한 것으로 판단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개월 후인 7월15일 은비는 의식을 잃은 채 경북대병원 응급실에 후송됐다. 병원에 왔을 당시 은비의 상태는 심각했다. 몸 곳곳은 화상 자국과 시퍼런 멍으로 가득했다. 양부모는 학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아이의 잘못으로 돌렸다. 양엄마는 경찰에서 “은비가 자해를 하고 머리를 박는 등 문제 행동을 했다”며 아이 탓으로 돌렸다. 화상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은비가 아몬드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리다 데인 것이다. 토스트기에 손가락을 넣어서 데인 거다”라고 주장했다. 또 멍에 대해선 “멍이 아니라 몽고반점이 다른 애보다 큰 것이다”고 양엄마는 말했다. 이런 사이 서울가정법원은 은비의 입양허가를 결정한다. 예비 양부모의 학대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입양허가’가 난 것이다.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입양체험’ 과정 중 발생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입양원과 입양체험 가정이 은비의 상태를 숨기고 입양허가를 받아냈다”고 주장한다. 경찰수사에서 양부모의 학대가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 8월 양부를 아동학대로 뇌사 상태에 빠트린 혐의(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상습 학대 및 중상해 등)로 구속기소했고, 은비가 숨지면서 ‘치사’ 혐의가 적용됐다. 현재 재판 중인데 2차까지 진행됐다. 은비의 시신이 부검을 거쳐 화장된 후인 11월5일부터 김은희 대구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는 “입양아동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과 보호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며 어린이들을 상품 취급하는 입양체험, 아동쇼핑의 문제를 지적한다. ‘입양체험’은 입양을 전제로 아이를 미리 체험할 수 있도록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은비 사건처럼 자칫 ‘아동쇼핑’으로 전락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입양체험 기간 동안 누가 아이의 법적 보호자인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입양 법제도 아래서 아동이 어떠한 양부모를 만날지 여부는 순전히 아동의 운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입양은 ‘로또’와 같다”고 말한다. 현행 입양 제도 아래서는 은비와 같은 불행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월3일 경기도 포천시의 한 야산에서 입양한 6살 딸을 살해한 뒤 시신을 불태운 혐의로 체포된 양부모에 대한 현장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인터넷에는 ‘입양 브로커’들 활개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는 ‘비밀입양 원함’ ‘미혼모인데 아기를 입양하고 싶어요’ ‘비밀입양을 원하시는 분’ ‘신생아 입양을 원하시는 분들’ ‘신생아 입양 원해요’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아이의 입양 전제 조건으로 ‘사례금’을 요구하고, 아이를 두고 흥정까지 한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도 ‘경제적 보상 가능’ ‘생활비 지원’ 등으로 ‘아이를 사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처럼 ‘비밀입양’이라는 명목하에 아기 매매가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아기 매매는 매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혼모의 증가세가 곧 아기 매매의 수요를 팽창시키는 원인이다. 미혼모가 양산되다 보니 임신과 출산 흔적을 없애려는 미혼모와 그 부모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밀매 시장에 내놓고 있다. 아기의 인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임신과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데 급급해하는 모습이다. 이런 삐뚤어진 의식이 자식에 대한 부모의 패륜을 방조하거나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에서의 ‘묻지마 입양’은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입양’ 글을 남긴 사람 중 상당수는 아이의 친부모나 입양을 원하는 사람을 가장한 ‘입양 브로커’다. 인터넷에 ‘개인입양’ ‘비밀입양’ 등의 글을 올려 입양 의사를 밝힌 미혼모들이 브로커들의 주요 타깃이다. 아기가 절실한 불임 여성들도 입양 브로커들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입양 브로커들은 아기 친부모와 불임 여성들 사이에 기생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고 있다. 연락처로 남겨 놓은 이메일과 휴대전화 번호는 타인의 개인정보를 도용한 것으로, 추적이 안 된다. 미혼모나 불임 여성이 ‘입양 의사’를 밝히면 ‘병원비와 사례비 보상’ 등의 감언이설로 밀매를 부추긴다. 만약 메일과 휴대전화를 통해 연락이 오면 출산일에 맞춰 산부인과 병원에 입원시킨다. 아이를 입양할 양부모가 자신이 낳은 것처럼 속이기 위해 친부모의 출산일에 맞춰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다. 출산 후에는 브로커를 통해 친부모에게 사례금을 주고 자신이 낳은 아이로 둔갑시킨다. 이렇게 감쪽같이 가족이나 친척 등을 속일 수 있다. 이때 최초 약속했던 사례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차일피일 미루면서 연락을 두절한다. 입양 브로커들은 아이를 인수한 사람에게서는 사례금을 모두 챙기고, 친부모에게는 일부만 주고 나머지는 갈취한다. 그리고는 어느 순간에 아기와 브로커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아기의 친부모는 그때서야 ‘입양 사기’를 당한 것을 깨닫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처벌이 두려워 신고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입양 브로커들은 이런 맹점을 잘 알기 때문에 아기 밀매를 해도 꼬리가 잘 잡히지 않는 것이다. 아기가 제대로 된 가정에 입양이 되었는지 아니면 범죄집단에 넘겨졌는지 알 수가 없다. 입양 흔적이 남지 않고 아이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여서 살해되거나 방치돼 죽어도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고 은폐될 수도 있다.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를 통해 아기를 사고팔기도 한다. 실제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자신의 아이를 돈을 받고 매매한 친모가 경찰에 붙잡힌 적도 있었다. 미혼모인 친모는 직거래를 통해 200만원을 받고 아기를 팔아넘겼다. 이처럼 아기 매매는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거의 적발되지 않고 있다.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불과 100만~1000만원에 팔아넘기면서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갓 태어난 아기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11월22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입양아동 학대근절·인권보장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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