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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 홍경래(1771~1812)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홍경래의 난’ 주동자로 유명한 인물이죠. 홍경래는 ‘역적’이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평안도 용강(龍岡)의 몰락한 양반 출신으로, 외삼촌 유학권에게 학문을 배웠고, 과거시험에도 응시했습니다. 비록 1798년(정조 22) 사마시에 낙방했지만, 학문의 경지는 제법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홍경래가 혁명을 꿈꾸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시험이었습니다. 이 무렵 조선의 과거는 시험을 보기 전부터 장원(수석)과 방안(차석) 등 합격자가 내정돼 있었습니다. 요새 ‘금수저’ 격인 그 당시의 권문세가 사이에서는 상식이었는데, 순진한 시골사람 홍경래는 이 사실을 모르고 낙방하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됩니다. 분기탱천한 홍경래는 ‘이놈의 썩은 세상 엎어버리고 말리라’ 하면서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나섭니다. 홍경래의 난은 비록 실패했지만 조선의 몰락을 가속화시킵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홍경래 사례는 허균(1569~1618)의 ‘호민론’을 연상케 합니다. 허균은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민은 일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백성들로 법을 받들며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면서 얽매인 채 사는 사람들입니다. 항민은 양민(良民)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원민은 지배층의 수탈을 못마땅하게 여겨 윗사람을 탓하고 원망합니다. 원민은 요즘의 악플러와 비슷합니다. 악플러는 악성댓글만 달 뿐 현실을 바꾸려고 행동하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항민과 원민은 두려운 존재가 못 됩니다. 허균에 따르면, 참으로 두려운 것은 호민입니다. 호민은 남모르게 딴마음을 품고 틈만 엿보다가 시기가 오면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의 부조리에 도전하는 무리들입니다. 호민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저절로 모여들고, 항민들도 또한 살기를 구해서 따라 일어서게 됩니다. 역사상 숱한 반란의 주역들은 모두 호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항민과 원민, 호민의 경계가 고정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홍경래를 보시죠. 그는 조선왕조의 충실한 신하를 꿈꾸고 과거에 응시했으니 출발은 항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부정부패 때문에 자신의 이상이 좌절된 것을 알게 돼 원민으로 변했고, 부조리한 현실이 구조적 모순에서 온 것을 깨닫고 호민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설(辭說)이 길었지만, 홍경래와 호민론을 보면 작금의 우리 사회와 비슷하지 않은가요. 11월12일 광화문 일대에 운집한 100만 인파는 도대체 항민인가요 원민인가요 호민인가요? 허균의 분류에 따르면, 이들은 항민과 원민은 아닙니다. 원민에서 호민 사이인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처럼 민의를 무시한 채 역주행을 계속하면 항민의 호민화(豪民化)만 가속화될 뿐입니다. 그 결과는? 각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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