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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호 이끌 ‘구세주’이자 팀 흔들 수 있는 ‘위험요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은 최근 6경기 연속 무득점을 기록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 AP연합

 

지난 1년간 손흥민을 향한 시선은 따가웠다. 400억원에 육박하는 아시아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옮겼지만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보였다. 리그에서는 4골을 넣는 데 그쳤다. 시즌 총 득점은 8골이었다. 앞서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던 기량이 증발했다. 토트넘 현지 팬들 이상으로 비판 강도가 뜨거웠던 쪽은 한국의 팬들이었다. 제2의 박지성이 되길 기대했지만 활약이 미진하고 축구 외적인 가십이 이어지자 축구에 대한 열정까지 의심했다. 지난 8월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때도 손흥민은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가장 큰 비난거리였다.

 

 

‘축구 대세’로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

 

지금 한국 축구의 대세는 다시 손흥민이다. 석 달 전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맞은 두 번째 시즌은 뜨겁다. 지난 9월에만 5골을 몰아쳤다. 시즌 시작 후 10연승을 기록 중이던 맨체스터 시티를 처음으로 꺾은 것도 손흥민의 맹활약을 앞세운 토트넘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그런 활약을 인정해 손흥민을 2016~17시즌 프리미어리그 9월의 선수로 선정했다. 박지성도 해내지 못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수상이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몰려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으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가레스 베일, 스티븐 제라드, 웨인 루니, 티에리 앙리, 프랭크 램파드 등이 받았던 트로피를 든 손흥민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0월 들어서는 9월에 비해 기세가 꺾였지만 손홍민에 대한 토트넘과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최전방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 부상을 입자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을 최전방에 세우고 있다. 토트넘을 상대하는 팀들은 손흥민을 막아내야 할 최우선 선수로 꼽고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낯선 포지션에 A매치를 위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가운데서도 손흥민은 토트넘 공격의 선봉에 서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프리미어리그 적응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약을 시작한 손흥민이지만 대표팀에 오면 또 얘기는 달라진다. 9월과 10월에 치른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4경기에서 2승1무1패를 기록한 축구대표팀은 혼란에 빠져 있다. 특히 숙적 이란에 무기력하게 패배, A조 3위로 떨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과 전술, 선수 기용 문제가 도마에 올라 거센 비판을 받는 중이다.

 

대표팀의 부진을 끊기 위해선 손흥민의 활약이 중요하다. 실제로 4경기를 치르는 동안 손흥민의 플레이에 따라 성적이 춤을 췄다. 중국전과 카타르전에서 손흥민은 한국의 승리를 주도했다. 그러나 그가 결장한 시리아전과 경기력이 부진했던 이란전에서는 승리를 챙기는 데 실패했다. 특히 이란전에서 손흥민은 단 1개의 슈팅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란전 직후 슈틸리케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부진의 책임을 선수들에게 전가하는 발언을 해서 묻혔지만, 이란전 손흥민의 부진은 심상치 않았다는 게 기술위원회의 분석이었다. 그날 이란 수비가 손흥민에 대한 대인마크 같은 특별한 수비 전술을 쓰지 않았지만 활로를 열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트넘에서는 공을 잡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슈팅을 날릴 공간을 만들기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대표팀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양날의 검’ 된 손흥민

 

경기를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 외의 문제도 숨어 있다. 지난 9월 중국전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후반 44분 정우영과 교체되며 나온 손흥민은 벤치 앞에 세워 둔 물병을 강하게 걷어찼다. 3대0으로 이기던 경기가 3대2로 좁혀진 데 대한 아쉬움인지, 교체에 대한 불만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화합이 중요한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도를 넘어선 태도였다는 비판이 일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문제 인식을 갖고 10월 예선에 소집할 명단을 발표하며 “태도가 불손했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슈틸리케 감독으로선 흐트러진 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최고 스타인 손흥민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강수를 뒀다. 손흥민도 대표팀 합류 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란전이 끝나고 다시 불협화음이 일었다.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 이란에 졌다”고 한 슈틸리케 감독의 발언에 대해 손흥민은 “선수들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인데 그런 발언은 아쉽다”며 고개를 떨궜다. 손흥민의 인터뷰는 항명과 반발의 뉘앙스를 띠며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을 가중시켰다.

 

손흥민은 졸지에 ‘양날의 검’이 됐다. 최고의 무대에서 자기 기량을 입증하고 있는 에이스를 슈틸리케 감독이 경기장 안팎에서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지성의 경우 같은 레벨의 스타였지만 대표팀에 희생하고 헌신한다는 의식이 강했던 세대였지만, 10대의 나이에 유럽으로 건너가 성장한 손흥민은 자기표현이 강한 신세대다. 그런 태도를 지지하는 팬과 비판하는 팬이 맞서며 대표팀은 소통과 화합 면에서도 의심을 받고 있다. 전술적인 차원은 물론, 조직관리 차원에서도 손흥민은 슈틸리케 감독의 숙제가 되는 모양새다.

 

이란전이 끝난 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직접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대화를 나누며 문제를 인식했다. 일각에서는 감독 교체 요구도 일었지만 정몽규 회장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의 선택은 대표팀 수장을 바꾸는 극단적 변화가 아닌 내부 시스템의 개선이었다. 손흥민에 대한 특별 관리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위업으로 가는 도중 위기를 맞은 대표팀은 11월에 A조 2위 우즈베키스탄과 운명의 일전을 펼친다. 손흥민은 슈틸리케호를 이끌 구세주이자 팀을 흔들 수도 있는 위험요인이다. 슈틸리케 감독과 대한축구협회가 선택한 방식이 국가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을 각성시킬 수 있을까. 손흥민은 대표팀의 에이스다운 자격을 남은 최종예선에서 증명할 수 있을까. 토트넘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이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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