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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눈치 보기 행정, 땜질식 대책…아이들은 여전히 위험하다
최근 4개월 사이 ‘통학 차량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거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모두 전남·광주 지역에서 일어났다. 관계기관이 대책을 마련한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때뿐이었다. 관리 소홀은 여전했고, 안전의식도 나아진 게 없었다. 차량 안전 매뉴얼은 있으나 마나였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지난 4월6일 광주에서는 중증장애를 앓던 박한음군(8)이 특수학교 통학버스 안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68일간 병원에 있다가 숨졌다. 약 3개월 후 광주 광산구의 한 유치원에 다니는 중국 동포 최아무개군(4)이 8시간 동안 통학버스 안에서 방치돼 의식불명에 빠졌다. 한음이가 다니던 특수학교에서 최군이 다니던 유치원은 승용차로 12분 거리(4.3km)에 있었다.
불과 12일 만인 이달 10일에는 전남 여수의 한 어린이집 앞 공터에서 원생인 박아무개군(2)이 12인승 통학 차량에 깔려 숨졌다. 박군은 이 통학버스를 타고 어린이집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차량을 운전한 어린이집 원장은 원생들이 모두 하차하자 다른 지역 원생들을 태우기 위해 차를 후진하다 뒤쪽에 서 있던 박군을 발견하지 못하고 뒤범퍼로 들이받았다. 가슴과 머리를 심하게 다친 박군은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목숨을 잃었다.
관리소홀, 부주의, 안전의식 결여
세 사건의 공통점은 ‘관리소홀’과 ‘부주의’ ‘안전의식 결여’였다. 박한음군과 최군은 차량에 탑승한 통학 보조교사와 인솔교사가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위험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박군 사고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원장이 차에서 내려 차량 근처에 아이들이 있는지 확인만 했어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교육 당국이 만들어 보급한 ‘차량 안전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통학버스 안전 매뉴얼을 만들어 각 급 학교에 배포했다. 여기에는 통학차량 운전기사와 인솔 교사들이 지켜야 할 안전수칙과 통학버스 관리지침 등이 명시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차량 탑승 때 안전벨트 착용 여부 확인’ ‘어린이 한 명씩 하차시킬 것’ ‘운행 종료 후에는 뒷좌석까지 확인’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선 교육청도 사실상 점검에서 손을 놓고 있다. 세 사건을 보면 통학 보조교사, 인솔교사, 운전기사와 차량을 운전한 어린이집 원장 모두 무사안일했던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최근의 통학버스 사고는 어른들의 과실이 낳은 인재다.
지금까지 일어난 ‘어린이 안전사고’는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게 대부분이다. 그만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도, 실제 현장에서는 무시돼 왔던 것이다.
시사저널은 이라는 기사를 통해 한음이 사건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한음이는 세포가 생성되지 않는 ‘미토콘트리아 근병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지난해 3월 광주에 있는 한 특수학교에 입학했고, 학교 버스를 타고 등·하교 했다. 한음이의 경우 이 학교 입학가능 실태조사를 할 때 시력(불빛에 반응), 반사 신경 없음, 그리고 목 가누기가 가장 걱정이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고개가 꺾여서 가만히 놔두면 갑자기 경직이 심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됐던 것이다.
특수학교 통학버스에는 차량 운행 중 학생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통학차량실무사(보조교사)가 탑승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특수학교의 특성상 대부분의 학생이 중증 장애를 앓고 있어 통학 보조교사는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그러나 당시 통학버스의 블랙박스를 보면 통학 보조교사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한음이가 울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구고 있는데도 통학 보조교사는 휴대전화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결국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모두 놓치고 말았다. 통학 보조교사가 조금만 한음이의 상태를 살폈다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아이였다.
최군도 통학버스 인솔교사나 운전기사, 유치원 측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 최군의 경우 세 번에 걸쳐 발견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두 놓쳤다. 인솔교사(여·28)가 아이들이 내린 뒤 차량 안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살펴봤더라면 최군은 발견될 수 있었다.
보통 학교 통학버스는 등·하교 때가 아니면 주차장이나 학교 인근에서 대기한다. 당시 통학버스 운전기사(51)가 차량 안을 한 번만 확인했어도 최군은 금방 눈에 띌 수 있었다. 하지만 운전기사는 “아무도 없겠지” 하는 생각에 유치원과 1.5km 정도 떨어진 자신의 아파트 인근에 문을 잠근 채 버스를 주차했다. 그리고는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갔다.
최군이 발견될 수 있는 기회는 또 있었다. 비록 방학 중이었지만 유치원에서 학생들의 출석상황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등교한 최군이 없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최군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최군은 밀폐된 버스 안에서 무려 8시간이나 갇혀 있었다. 오후 4시30분쯤이 되자 운전기사는 하원 준비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러다 누군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최군이었다. 이날 광주의 날씨는 최고기온이 35.3도까지 올라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밀폐된 버스 안의 온도는 60도에 육박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군의 체온도 40도를 웃돌았다.
최군은 부랴부랴 병원으로 이송됐고, 현재 전남대병원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최군은 차량 안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던 최군은 버스 안에 쓰러졌다. 통학버스 안에서 발견된 최군의 가방 안에서는 뚜껑이 열린 빈 물통과 물통을 쌌던 비닐봉지가 찢어진 채 발견됐다. 최군의 어머니는 “극심한 갈증과 고통에 물을 마시려고 봉지를 찢고 빈 물통을 열어 물을 마시려고 한 것 같다”며 비통해했다.
강력한 행정조치 뒤따라야
연이은 통학버스 사고가 발생하자 관계기관들은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국회에서는 특수학교 교실과 통학버스 안 폐쇄회로TV(CCTV) 설치 의무화, 통학차량 안 비상경고음 장치 탑재 의무화, 잠자는 아이 특별 점검하기 등을 골자로 하는 일명 ‘한음이법’이 추진되고 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화성병)이 주도하는 이 법안은 현재 국회 법제실에서 관련 법 시행에 따른 예산 규모를 추계하고 있다.
최군 사고가 터진 후 광주시교육청은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교직원과 운전자에 대한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특히 운전자에 대해 교통안전교육을 연 2회 정례화하고 어린이 통학버스 전수조사를 연 2회 실시하고 안전점검을 상·하반기별로 정례화하기로 했다.
유치원별로 안전사고 예방 담당자를 지정하고 현장점검을 실시하는 안전사고 예방 담당제를 운영하기로 했다. 차량 내부의 동승 보호자 좌석과 뒷좌석에는 위기상황을 알리기 위한 안전벨을 부착한다. 또 운행 종료 후 차량 내에서 학생 움직임 감지 시 클랙슨이 울리고 경광등이 깜박이는 동작 감지 센서도 설치한다. 사고가 난 유치원에 대한 안전교육과 통학버스 운영 의무 위반 등에 대한 행정조치도 강화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대책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여론 눈치 보기 행정이나 땜질식 대책은 오히려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뿐이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사고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일선 학교가 매뉴얼을 지켰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사고 후에는 강력한 행정조치가 뒤따라야만 실효성이 있다는 뜻이다.
“시장님, 교육감님 너무하시네요”
지난 8월4일 한음이 아빠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몇 가지 캡처 사진도 첨부해서 보냈다. 그는 “조선족인 최군과 한음이에 대한 윤장현 광주시장과 장휘국 광주교육감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며 “한음이가 장애아라서 죽어서도 차별받는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인 한음이 형 한결이는 동생이 사망한 지 3일 후인 6월15일 윤장현 광주시장과 장휘국 광주교육감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윤 시장에게는 한음이 기사 링크를 걸고 “시장님, 혹시 이 사건 아시나요?”라고 물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도 반응도 없다. 장휘국 교육감에게는 “광주 ○○학교 고 박한음군 친형입니다”라며 통학버스 블랙박스 영상을 첨부한 후 학교 측의 문제를 제기했으나 역시 묵묵부답이었다.그런데 최군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은 윤 시장과 장 교육감은 달랐다. 윤장현 시장은 3일 최군이 있는 전남대병원을 방문한 후 페이스북에 사진이 포함된 관련 글을 포스팅했다. 사진 속에는 윤 시장과 전남대병원장 그리고 최군의 부모 등이 나와 있다.윤 시장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 아이를 보고 이제 덥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폭염 속에 8시간 가까이 통학버스에 방치되었다니, 우리 어른 모두를 죄인 되게 하였습니다”라며 최군과 부모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장휘국 교육감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관련 글을 포스팅했다. 그는 “유치원 어린이 사고 소식에 맘이 편하지 않아 휴가를 중단하고 출근했습니다.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학부모 위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논의하면서 내내 안타깝고 마음 아픕니다. 아가야 제발 의식을 차리고 엄마에게 돌아와 주렴. 제발, 제발. 하나님, 꼭 이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 주세요”라며 최군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한음이는 죽는 그날까지 “엄마” “아빠” “형”이라고 불러보지를 못했다. 그런 동생이 억울하게 죽자 중학생 형이 시장과 교육감에게 사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소연했는데도 모른 체했다. 같은 통학버스 사고인데도 최군과 한음이 사건을 보는 광주시장과 광주교육감의 시각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한음이 형은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의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웠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