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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으로 체제 결속 다지는 김정은

북한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고 있는 31회 올림픽에 공을 들이고 있다. 김정은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스포츠의 꽃’이라는 올림픽을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역도와 사격·유도·레슬링 등 9개 종목 3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또 권력 실세로 간주되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가체육위원장을 현지에 파견했다. 최룡해가 중국과 러시아 외에는 서방 국가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리우행(行)은 이번 올림픽에서 어떻게든 소기의 성과를 거두겠다는 북한 당국의 뜻이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리우올림픽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란 평가도 나온다. 집권 첫해인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북한은 금메달 4개로 20위를 차지했다. 4년 만에 다시 찾아온 올림픽을 계기로 핵심 종목의 선전(善戰)을 통해 도약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을 유도하고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체육 강국을 통한 사회주의 강국’을 주창해 왔다. 또 지난 5월 7차 노동당 대회에서는 “체육 강국 건설을 다그쳐 주체 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세계에 빛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 보유를 주장하며 이른바 군사 강국을 강조해 온 김정은이 체육을 통한 도약을 시도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8월10일 브라질 리우올림픽 탁구 여자 개인단식에서 북한의 김송 선수(위쪽)와 일본의 후쿠하라 아이가 동메달 결정전을 펼치고 있다.

‘장군님 덕분’ 한 마디에 아파트와 승용차

북한은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의 실적을 체제 선전에 곧장 활용해 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인 지난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정성옥은 우승 소감을 묻는 서방 기자에게 “결승 지점에서 장군님(김정일을 지칭)이 어서 달려오라며 불러주시는 모습이 떠올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의 인터뷰 장면은 북한 TV에 수없이 반복 방영됐고, 북한은 그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줬다. 고급 아파트와 승용차가 선물로 주어지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체제 찬양에 필요한 호재를 적시에 만들어준 데 대한 보상이었다. 

리우올림픽을 김정은 제체를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으려는 모습은 현지에서도 나타난다. 리우올림픽 선수촌 아파트형 북한 숙소에는 외벽에 대형 인공기가 걸려 있다. 외벽 3개 층을 덮을 정도의 대형 깃발이 다른 국가의 선수촌과 대비를 이룬다. 전례 없는 이런 모습은 국제사회에 북한의 존재를 어떻게든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란 해석이 선수촌 안팎에서 나온다고 한다.

북한 선수들도 폐쇄적인 과거의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 선수와의 만남에서 냉랭하게 대하거나 무관심하던 데서 벗어나 스스럼없이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금기시하던 한국 취재진과의 대면도 꺼리지 않는다는 게 현지 전언이다. 이를 두고 김정은 체제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부각·선전하기 위한 이미지 전략이란 지적도 나온다. 젊은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북한 체제의 신세대 선수들이 외부와 거리낌 없이 어울리는 장면을 통해 개방적인 인상을 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올 들어 4차 핵 실험과 잇단 미사일 발사로 도발적 행태를 보여온 김정은 체제에 대해 유엔과 국제사회는 만장일치로 제재를 결의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한반도와 국제정세를 긴장시켜온 북한이 올림픽 무대에 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대북 인식이 개선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리우를 무대로 개방적 제스처를 취하고 나섰지만 결국 북한이 확인할 수 있는 건 고립감과 국제사회의 냉대뿐일 것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8월 9일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여자양궁 개인전 32강전을 관람한 후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 밝히며 한국 정부 압박

리우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대남 유화공세의 수위도 올리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용의를 밝히면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리용선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은 7월말 외신 인터뷰에서 “통일에 이바지되는 일인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평창올림픽에) 참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말했다. 리용선은 또 “체육교류 등을 계속하자는 게 북한 측 입장인데 저쪽(한국)에서 문을 닫고 만나주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도발적 행태는 거두절미한 채 대화공세를 거부하며 대북제재 공조에 나선 한국 정부를 대결 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리우 현지에서 드러나는 북한 선수단의 적극적이고 유화적인 모습과 달리 평양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북한은 리우올림픽 개막식 소식을 30시간이 지난 6일 오전 관영 조선중앙통신으로 보도했다. “우리나라 올림픽 선수단이 남홍색 공화국기를 휘날리며 경기장에 들어섰다”는 짤막한 내용이 전부였다. 북한 TV는 이보다 훨씬 늦게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경기 소식도 시간차를 둔 녹화방송이다. 최룡해의 동정이나 북한 선수단의 목표 순위에 대해서도 북한 관영 매체들은 함구하고 있다. 아직 북한에 대한 리우 현지의 분위기가 정확히 탐지되지 않은 데다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주민들에게 상세하게 소식을 전할 상황이 아니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북한 엘리트 세력의 탈북 행렬이 이어진 점도 평양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서방에 나가 있던 외교관이 가족을 데리고 탈북하거나 김정은의 비자금 중 거액을 챙겨 망명길에 올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때마침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탈북자 숫자가 처음으로 늘어나는 추세라는 서울발 보도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 리우에서의 북한 선수단 승전보를 기다릴 사람은 평양의 김정은이다. 자신의 도발적 행태와 북한의 인권유린 상황에 대한 세상의 냉랭한 시선을 스포츠로 녹여보려는 심산이다. 하지만 그의 셈법을 바꿔놓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해 보인다. 김정은의 앞날이 녹록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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