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자살 등 치명적인 부작용 초래…성범죄에 가장 많이 이용되기도
수면진정제로 잘 알려진 약물 중에 ‘졸피뎀’이 있다. 불면증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처방되는 것 중 하나다. 향정신성 약물이지만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수면진정제로 알려져 있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졸피뎀 성분 상품은 스틸녹스(한독약품)·졸피드정(한미약품)·졸피람정(환인제약)·졸피신정(명인제약)·졸피뎀정(한국파마)·졸피움정(고려제약) 등 6개다. 2014년 기준으로 스틸녹스가 가장 많이 팔렸다.
졸피뎀은 물과 함께 1정을 복용했을 때 5분 만에 효과가 나타나고 몸에서 빠르게 배출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졸피뎀은 정말 안전한 약물일까. 그렇지 않다. 치명적인 부작용을 갖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 정량을 지키지 않거나 마약처럼 중독됐을 경우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비정상적인 공격성에 기억상실까지
유럽의약품청(EMA)은 졸피뎀 복용 후 8시간 내에는 운전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졸피뎀은 1일 1회 1정(10mg)이 권장량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여성은 회복시간이 더 걸린다며 사용량을 절반으로 낮춰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성이 생기면 권장량보다 더 복용하게 되고 결국 중독에 이르게 된다. 졸피뎀의 부작용은 심각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사고 및 행동 변화와 탈억제 증상이다. 이는 비정상적인 공격성 및 외향성, 폭식, 수면운전, 몽유병, 단기 기억상실, 자살충동 등으로 나타나며 상당히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호흡과 관련된 근육을 이완시켜 호흡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운전할 때도 갑자기 졸음이 쏟아질 수 있다. 판단력이 흐려지므로 평소와 다른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시험·회의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잠에서 깬 다음 날에는 자신이 한 행동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작용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복용 후에는 환각작용에 의한 자살, 교통사고 등 각종 범죄나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지난해 1월 물티슈 업체 몽드드 전 대표 유정환씨는 서울 강남에서 벤틀리 승용차를 운전하다 연달아 교통사고를 냈다.
사고 직후 남의 차를 훔쳐 타고 달아나고, 피해 차주의 어깨를 때리고 출동한 경찰 앞에서 옷을 벗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유씨의 이런 엽기적인 행동 뒤에는 졸피뎀이 있었다. 그는 회사 직원들을 통해 다량의 졸피뎀을 확보한 후 한꺼번에 투약한 뒤 운전했다. 1심 재판부는 “유씨는 평소에 졸피뎀 투약으로 기억을 잃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졸피뎀은 범죄 피해자를 아주 손쉽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에 악용된다. 타살을 자살로 둔갑시키기에도 아주 용이하다. 지난 2014년 8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포천 빌라 살인사건’의 시신 2구에서도 졸피뎀 성분이 발견됐다. 피의자는 2013년 5월 졸피뎀을 구매했는데, 피해자의 행적이 끊긴 시기와 비슷하다. 경찰은 피의자가 계획적으로 술에 수면제를 타 피해자가 잠들자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빌라에서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가장인 이아무개씨가 아내와 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약독물 검사 결과, 숨진 일가족 3명의 체내에서 ‘졸피뎀’ 성분이 검출됐다. 이씨가 아내의 부채 문제로 고민하다 나머지 가족을 졸피뎀을 먹여 살해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성범죄 뒤에 ‘졸피뎀’ 있다
졸피뎀은 약물 관련 성범죄에 가장 널리 악용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06〜12년 사이 의뢰된 진정제 성분 약물 관련 성범죄 148건을 분석한 결과, 졸피뎀을 사용한 경우가 31건으로 가장 많았다. 피해자를 ‘항거불능’ 상태에 빠뜨려 성폭행할 목적으로 몰래 졸피뎀을 먹였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서울 고법에서 40대 남성이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휴대폰 앱 채팅을 통해 알게 된 B씨(22)에게 졸피뎀을 다이어트 약이라고 먹인 후 추행했고, 또 다른 여성 C씨(29)에게는 졸피뎀 1정을 다이어트 약이라고 먹게 했다. C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성폭행했다. 40대 카페업주 A씨는 여종업원에게 졸피뎀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한 뒤 성폭행하는 등 무려 16명에게 41차례나 유사한 수법을 반복해 징역 1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렇듯 누군가 음흉한 생각을 갖고 졸피뎀이 든 술잔을 권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졸피뎀은 술과 함께 마시면 더 위험한데, 기억을 잃거나 환각 증세까지 일으킬 수 있다. 그럼 내 술잔에 졸피뎀이 들어 있는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의심스러운 자리에서 평소 주량보다 극심하게 어지럽거나 졸리고 몸에 힘이 없는 느낌이 든다면 경계심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프로포폴이 마약으로 분류된 이유 중 하나가 약물 발현용량과 치사용량이 별 차이 없기 때문이다. 약간의 용량 초과로도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졸피뎀 또한 이와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1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연예인 자살을 집중 보도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졸피뎀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인 탈억제(두 가지 욕구가 충돌해서 전혀 관련 없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로 인한 자살 충동과 단기 기억상실 증상에 대해 방송했다.
약물 복용 상태에서 탈억제돼 나타나는 충동적 행위들은 ‘의도치 않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이 자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연예인 상당수는 ‘졸피뎀’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지오디의 멤버인 손호영씨는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의 한 교회 주차장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다. 당시 손씨는 아버지가 처방받아 보관하고 있던 졸피뎀 5정을 복용했었다. 가수 에이미는 2012년 11월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춘천지법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에이미는 집행유예 기간이던 지난해 9월 퀵서비스로 졸피뎀을 전달받아 복용한 혐의로 또다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에이미는 졸피뎀 복용 이유에 대해 “자살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졸피뎀을 먹는 잘못을 저질렀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도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무엇이 은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졸피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13년 지기 지인의 딸 은지(가명·당시 29세)가 졸피뎀 성분의 스틸녹스 중독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다 결국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밝혔다. 그는 “졸피뎀에 중독되면 마약만큼 끊기 힘들고 무엇보다 자살 충동과 환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환자 수는 최근 5년 사이 57%나 증가했다. 덩달아 불면증 치료제 시장도 계속 커지고 있다. 그러나 졸피뎀 관리는 여전히 허술하다. 신종 마약으로 분류돼 의사 처방이 있어야만 복용이 가능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다. 강력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마약처럼 중독되면 자살 충동과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위험한 약물이지만 실제로는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철저하고 엄격한 관리 시급하다
예를 들어 환자가 쇼핑하듯 의료기관을 돌면서 졸피뎀을 처방받을 수 있다. 한 번에 28일 이상 처방은 금지돼 있지만, 환자가 이전에 처방받은 사실을 숨기고 추가로 다량의 약을 수령하면 막을 수가 없다. 의사가 즉시 이전 처방 사실을 확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방식으로 인해 중독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분석이다. 때로는 환자가 본인부담금으로 모든 졸피뎀 처방비용을 부담할 테니 그 이상 분량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졸피뎀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경찰은 ‘중고나라’ 카페를 통해 졸피뎀을 사고판 간호보조사·헬스트레이너·고등학생 등 수십 명을 적발했다. 이들 중에는 입원한 환자의 졸피뎀을 훔쳐 판매하려고 한 간호사도 포함됐다.
간호사 박아무개씨(29)는 지난 3월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처방받은 졸피뎀 40정을 의약품 보관함에서 몰래 훔쳤다. 박씨는 이것을 중고나라를 통해 현금 30만원을 받고 판매하려고 했다.
간호보조원 강아무개씨(31)는 지난 1월15일~3월14일 3회에 걸쳐 자신의 불면증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강씨는 실제로는 자신이 복용하지 않고 처방받은 졸피뎀 204정을 중고나라 카페를 통해 총 11명에게 150만원을 받고 판매했다.
이들은 수면제를 구한다는 중고나라 게시글에 자신의 카카오톡 대화명과 함께 ‘도와 드리겠다’는 댓글을 남기는 방법으로 구매자들을 모집했다. 카카오톡을 이용하면 연락처를 공유하지 않고도 거래량과 금액 등을 정할 수 있다. 거래는 주로 택배를 이용했다.
현재 향정신의약품은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다만 주사제와는 달리 처방전을 통해 환자가 약을 받는 향정신성 약품은 관리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노환규 전 의사협회 회장은 “환자가 보관하며 복용을 책임지게 되므로 처방의 기준과 처방 시 본인의 신분 확인에 더욱 엄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위험한 약물인데도 졸피뎀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소비자는 드물다.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홍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허술한 약물 관리제도의 개선책을 시급히 마련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개인이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