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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부패특별위원회에 바란다

부정부패와 관련한 재미있는 공식이 있다.‘부패=독점권+재량권-책임’. 부패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알려진 로버트 클릿가르드가 만든 이공식에 따른다면, 정치인이건 재벌 회장이건 고위 공직자이건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누군가가 자기 권한을 제멋대로 휘둘러 부정한 이익을 챙길 뿐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부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부패를 척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위의 부패 등식에서 +항을 작게 하고 -항을 크게 하면 된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단순한가. 규모가 크건 작건 간에 부패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나의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시스템으로 자리 잡은 한국 현실에 클릿가르드의 부패 등식을 적용하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의사가 겪은 어처구니없는 경험담이다. 수도권 신도시에 성형외과를 개업해 큰 돈을 벌어 세무서에 곧이곧대로 소득을 신고했다. 그랬더니 담당 공무원이 뜨악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융통성’이 없다는 뜻이었겠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 후 동네의사들이 당신만 깨끗한 척하느냐며 난리를 피워 곤욕을 치렀단다. 그동안 의사와 세무 공무원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으로 덧셈을 해왔는데 난데없이 누군가가 나타나 계산을 망치려 했으니 시쳇말로 왕따를 당한 것이다.

정치 권력형 부패부터 철저히 파헤쳐야
 “대통령이 되니 돈을 싸가지고 은데, 한번에 백억원을 가지고 온 사람도 있었다.” 한 전직 대통령이 스스럼없이 이렇게 말하는 나라에서 이 성형외과 의사가 분통을 터뜨리는 부조리는 송사리 부패(petty corruption)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런데도 그것에 맞서 싸우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의사의 솔직한 고백이다(그는 결국 세금을 적게 내기로 타협하고 그 대신 남는 돈을 교회에 헌금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이런 판국이니 천문학 규모의 뇌물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거래되는 정치 권력형 부패를 척결하는 일은 오죽할까. 이쯤에 이르면 덧셈과 뺄셈만으로 이루어진 클릿가르드의 부패 등식은 난해한 고차 방정식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있다.“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안으로 나라를 좀먹는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부정 부패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단호하게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 합니다.” 7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취임사 한 대목이다(정치 자금 수천억 원을 주무른 그 이전의 대통령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비록 그 자신은 부패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아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으며, 사회 곳곳에서 부패의 악취가 진동했다.

 지난 9월10일 대통령 자문기구인 반부패특별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7일에는 대검찰청에 경제 사범과 고위 공직자 부정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반부패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다. 또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부패방지기본법이 제정된다. 고급 옷 로비 사건, 고관집 거액 도난 사건 등으로 흠집이 나기는 했지만 부패 척결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우려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예로 반부패특별수사본부장으로 정해진 신광옥 대검 중수부장은 그동안 검찰의사정이 정치인에게 집중되어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며 이제는 과거와 달리 경제인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사정을 강도 높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송사리 부패도 아닌 공룡 같은 큰 부패가 정치권과 관련 없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것일까? 또 윤형섭 반부패특위 위원장은 환부를 도려내기보다 부패의 예방 의학적 치료와 국민 교육에 무게 중심을 두는 발언을 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결코 용도가 폐기된 진부한 가르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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