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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력 · 포용력 부재, 계파간 공천 다툼 등 장애물 태산

김 청산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총선 체제를 진두 지휘하려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정치 시험대 하나를 가까스로 통과했다. 지난 8월9일 3김 청산 및 제2 창당을 선언한 이총재는 곧바로 당을 수습해 총선에 전력 투구하는체제를 구축하려 했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민산) 재건이라는 강력한 복병이 출현해 벽에 부딪혔다. 이에 이총재는 민산 싹  자르기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민산 재건에 참여한 김명윤 고문, 강삼재 · 박종웅 의원 등 당내 YS 직계 3인의 당직을 박탈한 것이다.

  그러나 YS와 이총재의 첫 힘겨루기라 할 민산 재건 및 당직 박탈 파동은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YS가 9월13일 민산 재건을 총선 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YS와 이총재가 벌인 힘겨루기는 이총재가 1라운드에서 '승리' 한 셈이다. 이총재는 일단 지도력을 시험하는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제거됨으로써 복잡한 당내 역학구도를 헤쳐갈 힘을 얻게 되었다.

  미국에 있던 이총재는 민산 결성 작업을 연기한다는 YS의 결정에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은 현명한 판단' 이라며 흡족해 했다. 아울러 야당다운 야당 구실을 못한다는 YS의 비판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는 가는 곳마다 현정부 비판에 열을 올렸다. 이는 민산 재건 유보 결정을 끌어낸 여세를 몰아 반DJP투쟁을 이끌어갈 확고한 중심 인물이자 대안 세력은 자기밖에 없다는 이미지를 극대화하는행보이기도 하다.

계파간 공철권 싸움 막을 길 '막막'
  이총재가 당내 민산 재건 세력을 상대로 처음부터 싹 자르기에 나선 것은 당면한 총선보다도 앞으로 대권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포석이었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이총재의 한 핵심 측근은 "이총재는 민산의 싹을 자르지 않을 경우 내년 8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확고 부동한 차기 대권주자 자리를 굳히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을 과반수 이상 확보해 차기 총재로 선출되는 데는 비주류와의 연합이 필수인데, 민산 재건을 방치할 경우 사실상 비주류와 연합해 총재로 재추대되려는 목표가 물 건너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화근을 미리 제거하려 한 것이다"라고 전했다.

  어쨌든 이총재는 당내 분란의 최대 불씨이던 민산 문제를 당장은 자기 뜻대로 돌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총재 체제의 순항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지도력 문제가 난항의 핵심이다.

  이총재의 지도력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당내 각 계파와 계보 중진의 공천권 다툼,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이 야당으로서 처음 치르는 전국 규모 선거이다. 집권당 시절에 총재(대통령)가 전권을 행사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그동안 반DJP 정서 하나로 뭉쳐온 당내 세력들은 총선을 앞두고 자기 목소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각 계파는 크게 이총재 직계(주류) · 옛 민정계 · 및 민주계 · YS 직계로 나뉜다. 옛 민정계는 김윤환 부총재를 중심으로 하는 허주계와 이한동 부총재 계열로 나뉘고, 옛 민주계는 합당한 이기택 부총재 계열이다.

  이들 계파는 공천권을 확보하려고 별써부터 치열한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총재 직계인 주류에 대항해 계파 보스급 인사들은 공천권을 염두에 두고 지구당 대의원을 1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당연히 크고 작은 당내 문제를 둘러싸고 이들 사이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이총재에게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다는 점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총재의 당내 지도력 부재 현상은 9월9일 실시된 용인시장 보궐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총재는 용인지역 지구당위원장의 사퇴를 무릅쓰고 직계인 구범회 부대변인을 전격 투입했다가 득표율 3위로 참패했다. 한나라당은 겉으로는 여당의 금권 선거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투 · 개표 참관인조차 구하지 못해 쩔절 매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을 만큼 조직이 와해된 상황 탓이었다고 분석한다.

  이총재의 지도력 부재는 현재 전국 31개 지구당의 위원장이 공석이라는 점으로도 입증된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총재측은 용인시장 보선에서 참패한 것을 교훈 삼아 시급히 지구당 조직책을 선정해야 함을 절감하고 준비에 들어갔지만, 당내 계파 중진들은 참신한 인물을 영입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다리를 걸고 있다. 이는 중진들이 자기 세를 불릴 시간과 기회를 더 벌겠다는 속셈이다. 하여튼 이총재의 지도력 부재가 일사불란한 총선 체제를 구축하는 데걸림돌이 되고 있다."

  물론 이총재도 각 계파를 아우르면서 당선 가능한 인물을 공천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3김 청산과 제2창당을 화두로 꺼내면서 후속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를 위해 '뉴밀레니엄위원회'(위원장 김덕룡 부총채)를 총재 직속 기구로 두고 제2창당의 골격을 만들고 신진 인사를 영입하는 등 그림 그리기에 한창이다. 이 기구를 기반으로 삼아 당을 쇄신해 3김 청산 투쟁의 중심에서겠다는 것이 이총재의 구상이다.

  문제는 뉴밀레니엄 위원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도 이총재의 구호와 지도력이 도마에 오를 정도라는 점이다. 지난 9월6일 열린 뉴밀레니엄 위원회 토론회에 연사로 참석한 박형준 교수(동아대 ·사회학)는 21세기 수권 정당의 관점에서 본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이회창 총재의 지도력부재를 꼽아 파문을 던졌다. 박교수는 이총재가 반3김이라는 부정적인 구호에 매몰된 채 자기의지도력과 긍정적인 정체성을 국민에게 보여주지못하는 것이 한계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당내에서는 박교수가 대체적으로 한나라당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짚어냈다는 반응을 보인다. 현실 야당 정치에서 이총재가3김씨처럼 확고한 지역 기반과 카리스마, 자금 동원력 등을 발휘하지 못하면서도 이들을 넘어설 만한 특별한 강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즉 선거를 앞두고 '공천=당선' 이라는 3김 정치의 등식이 이총채에게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각 계파를 통제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작업이 쉽지 않다는 회의론이 평배하다.

  지도력 문제를 둘러싸고 이총재를 괴롭히는 또다른 문제는 정치 경험이 짧다는 점과 포용력이없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비주류의 한 중진은 "이총재의 문제는 법조계에 오래 몸 담으면서 몸에 밴 상황 판단과 일처리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웬만한 일은 자기 판단과소신으로 충분히 처리되는 법조계와 달리 정치에서는 아무리 싫어도 속내를 감추고 처리해야 할일이 많은데도 그 점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는불만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대선 때 박찬종 후보를 찾아가 머리를 숙이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받아들였지만, 정작 박씨 앞에서는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성과 없이 돌아왔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총재의 핵심 측근들도 이런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는 하지만 "결코 독선적이어서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총재의 심중에는 단기 필마로 대선에 뛰어들어 YS의 도움 없이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YS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천만표를 자력으로 얻었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또 대선 패배 후에도 복잡한 당내 계파와 계보를 아우르면서 총재 경선에성공했다는 점을 3김과는 다른 방식의 지도력이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아 달라는 주문이다.

중선거구제 등 여권의 흔들기 공세 거세
  민산 재건 시도를 제압한 이총재에게 남은 가장큰 숙제는 다가을 총선을 앞두고 발생할 공천권지분 싸움을 추스르는 해법을 찾는 문제이다. 이총재 측근들은 당내 계파 지분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일에 골몰하지만 각 계파의 능력을 계량화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한다. 가령 민주당과 합당할 때지분이 8 대 2였는데 이기택 부총재측은 총선 공천에서도 그 지분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총재측은 객관적으로 함량 및 자질에 편차가 있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을 고려하면 지분을고스란히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복잡한 당내 역학 관계를 풀 수 있는 공천 방식이 아직까지 준비되지 않고 있다.

  이총재에게 닥칠 또 다른 시험대는 여권의 흔들기 공세다. 청와대와 국민회의(신당)는 중선거구제 도입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은 두가지 모두 절대 수용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 의원 총회에서 이세기 의원이 소선거구제 당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듯이 일사불란한 상황만은 아니다. 따라서 이총재측은 수도권 출신 의원(옛 민정계 중심)은 중선거구제를 선호하는 편이어서 여권이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에게 물밑 접촉을 벌일 가능성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두 가지를 수용하면 여권은 과반 의석을 얻을 수 있으나 한나라당은 3분의 1도 못 얻을 것이다. 현재 여당 안(案)은 한 선거구에 2~4인을 선출하자는 것인데, 그럴 경우 영남에서도 여당은당선자 I~2명을 낼 수 있다. 반면 호남과 충청에서는 1,2등 모두 여권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에서는 인물난 탓에 야당이 당선 가능한 공천자를 2명 이상 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조직· 자금 열세, 새 인물 영업 난항
  이총재가 주창하는 제2 창당 작업의 성공 여부도 새 인물을 얼마나 영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야당의 새 인물 영입 작업은 뉴밀레니엄 위원회에서 각계 영입 대상 인사 파일을 만들어 이총재가 비밀리에 직접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척되는 상황은 별로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조직과 자금 열세라는 야당의 한계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과거 집권당 시절 탄탄히 다져놓은 자문위원 그룹조차 지금은 발을 뺀다. 그쪽에서는 마음은 한나라당에 가 있지만 몸은 갈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라고 전한다. 전직 장· 차관 및 시장· 도지사, 각계 권위자 등이 그들이다.

  결국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영남을 제외한 지역은 여권 신당에 인물을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가 당내에 팽배하다. 특히 최근 용인시장 선거에서 참패함으로써 수도권 출마 대상자 영입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이총재는 수도권 출마자를 영입하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다고 한다. 16대 의원 임기 중에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는 점을 강조하며 17대 총선까지 생각하고 신중하게 당을 선택하라는 권유가 주된 설득 수단이다. 이런 접근 전략은 현실적으로 3김 시대 이후 이총재에 견줄 만한 강력한 대권 후보감이 여권에 없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이미 발기인 대회까지 마친 여권 신당에 맞서 이총재가 어떤 영입 인사 카드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丁喜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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