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스스로 철회한 사건이 일어났다. YS는 지난 9월13일 오전 9시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을 통해
'민주산악회(민산) 재건을 총선 이후로 유보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야 정치권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민산 관계자들도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YS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사전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9월6일 민산 출정식을 강행하라고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이 민산 핵심 3안에 대한 징계 조처를 단행한 직후에도 김명윤ㆍ강삼재 의원은 의원 총회 등에서 당의 비민주적
처사를 규탄하면서 민산을 재건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터져나온 YS의 민산 재건 유보 방침은 비록 '총선 때까지'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지난 7월에 나온 YS의 민산 재건 발언 못지 않게 정치권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유보 방침이 결정된 것은 일요일인 지난 12일 상도동 저녁 식사 때였다. YS는 이 자리에서 김명윤ㆍ강삼재ㆍ박종웅 의원과 함께
민산 대책을 숙의한 끝에 그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박의원이 취재진에 중대 발표가 있다고 알린 월요일 8시까지만 해도
정가에서는 이 자리에서 민산 조직 확대 작업이 논의된 것으로 알았다. 그만큼 민산 유보 방침은 뜻밖의 사건이었다.
YS가 측근들에게 출정식을 강행하라고 지시한 뒤 겨우 7일 만에 유보 쪽으로 돌변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YS의 행보와 민산을 바라보는 여론의 눈길이 워낙 싸늘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YS 진영에서는 이런 상황을 비우호적인
언론 보도 탓으로 돌리면서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YS의 7월 발언이 출정식을 통해 현실로 드러나자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는 비판론이
쏟아졌다. 정가에서는 민산을 신당의 전 단계쯤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고, 특히 야당세가 강한 영남 지역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 분열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YS 진영은 이러한 여론에 큰 부담을 느낀 것 같다.
YS, DJ와 일전 위해 내전 종식 유보 결정에는 비판적인 여론을 의식한 현역 의원들의 망설임도 한몫 거들었다. 민심
향배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수도권 민주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YS의 텃밭인 PK 지역 의원들마저 특유의 지역 정서가 발휘될 가능성과
현재의 비판적인 민심을 저울질하면서 섣불리 민산 쪽에 체중을 싣지 않았다. 민산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리무중(五里霧中) 정국에서
'잔머리'를 굴리는 의원이 많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가입 의원 명단 공개가 출정식인 6일에서 추석 이후로 미루어졌고, 유보 방침을 발표하기 직전에는 이마저도 10월
중순께로 연기되었다. 그만큼 조직 확대 작업에서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YS가 민산 재건을 유보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의 내분 양상이 DJ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반DJP 투쟁을 더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민산을 띄운다는 것이 YS가 내건 명분이었다. 그러나 민산 출범은 반DJP는
고사하고 당 내분으로 곧바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YS 텃밭인 민주계와 PK 지역에서는 '어떻게든 양쪽이 화해해야 한다' '양쪽 모두 대체 왜
그러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YS는 12일 저녁 모임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꼴이 되다 보니 국민에게 적전 분열로 비치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적(主敵)인
DJ만 이롭게 할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측근이 여당이 내년 총선을 일여다야(一輿多野) 체제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고 지적하자
YS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이런 정황에 비추어 보면, YS는 민산을 둘러싼 상황이 DJ에게만 이로운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해 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
강행에서 유보로 급선회했다고 볼 수 있다. YS 처지에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주적과의 싸움을 위한 내전(內戰) 종식 선언인 셈이다.
내전 당사자인 한나라당 역시 "YS의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환영했다.
마주 보고 달리던 민산 열차와 한나라당은 정면 충돌 직전에 궤도를 수정한 셈이다. 두 달여에 걸쳐 전개된 이 싸움은
당사자들에게는 심각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국민에게는 보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되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재삼 확인한, 어처구니없는
촌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