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처리제 살포는 바다를 뒤덮은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지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이 신비한 약물은 기름 덩어리를
확실히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바다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물 처지에서 보면 유처리제는 난데없는 재앙에 황액을 더할
뿐이다.
바다에 뒤덮인 검은 기름을 제거할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선택되어 대량으로 뿌려지는 유처리제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독성 때문에
논란이 되어 왔다. 유처리제를 뿌림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여러 가지이다. 우선 ‘눈에 뛴다’는 점이다. 유처리제와 섞인 기름은 작은
입자로 분해된다. 그 결과 검은 기름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어 마치 기름덩어리가 제거된 것처럼 보인다.
잘게 분해된 기름은 엷게 수중으로 퍼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름 알갱이는 표면적이 커져 기름을 분해하는 미생물에 쉽게
노출됨으로써 효과적으로 분해된다. 유처리제로써 기대할 수 있는 궁극적인 효과는 미생물에 의한 기름의 자연분해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처리제에느 많은 유독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또 다른 오염을 낳게 된다. 유처리제는 세제를 만드는 원료인 계면활성제
30%와 탄화수소 용제 70%를 적은 양의 첨가제와 섞은 것이다. 구체적인 구성은 각 제조업체가 비밀로 삼기 때문에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들
물질 중에서 용제에 들어 있는 방향족 탄화수소와 계면활성제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체에 해를 주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유처리제는 사람에게 호흡장애 · 신경장애 · 피부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제품 검정 기준 모호해 이에 따라 기름 오염에 골치를 썩이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도 유처리제 품질 관리와 사용을
엄격히 규제 · 감시한다. 프랑스 등 몇몇 나라에서는 유처리제를 아예 쓰지 않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8종의
유처리제가 환경처로부터 형식 승인을 얻어 유통되고 있다. 한국화학공업(주) 성아물산(주) 덕산인텍스(주) (주)럭키 ICI우방 (주)태진화학
대일화학 동양화학이 각기 다른 상품 이름을 붙인 유처리제를 환경처에 신청하여 승인을 얻었다. 이 중에서 현재 실제로 생산 · 유통되는 것은
네가지 정도이다.
유처리제 형식 승인이나 검정을 위한 시험은 한국기기유화시험검사소에서 환경처의 의뢰를 받아 시행하고 있다. 검사소는 제품 생산
때마다 표본을 추출하여 유독성 여부를 조사한다. 형식 승인을 얻으려면 환경처에서 정한 유화율(유처리제가 기름을 분산시킬 수 있는 능력)과
생분해도(유처리제에 들어 있는 계면활성제가 미생물에 의해 해가 없는 물질로 분해되는 정도)기준에 통과해야 하고 생물 실험에도 합격해야 한다.
생물 실험은 유처리제가 식물 플랑크톤과 송사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유처리제를 3천ppm으로 희석해 넣은 물에 송사리를 24시간 담가두었을
때 50% 이하가 죽어야 기준에 적합하다는 식이다. 이같은 기준에 따라 작년 한 해 동안 8백30㎘(4천1백50드럼), 올해 10월까지는
8백13㎘(4천65드럼)이 생산되었다. 형식 승인 유효기간은 2년이다.
일부 환경 전문가들은 유처리제의 독성을 검사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생물 독성 검사는 식물 플랑크톤인
‘스테레트네마 코스타튬’을 유처리제가 섞인 바닷물에 배양하고 그 용액을 표준배양액과 비교하게 되어 있다. 환경처가 고시한 검정 기준은 ‘배양
용액이 표준시료와 같거나 약간 엷은 색조를 띨 것’이라고 되어 있다. 김상종 교수(서울대 · 미생물학과)는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성물질을 검사하는 기준으로서는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라고 지적한다. 또 송사리 실험도 송사리 자체에 대한 기준이 없어 개체의 차이가 검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성 줄이고 품질 감시해야 이에 대해 한국기기유화시험검사소 김정찬 품질부장은 “유처리제 시험은 일반적으로 일본 검정 방법을
준용하고 있으며, 기준도 일본과 같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문제는 형식 승인이나 검정 때 업체가 제출했던 표본 품질을 실제 사용 때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2~3년 전만 해도 원료비를 줄이기 위해 실제 사용하는 유처리제에 저질 원료를 섞어 넣고, 심지어는 기름을
처리해야 하는 유처리제에 석유를 섞는 일까지 있었다. 환경처 관계자는 “제품 생산 때마다 수시로 표본 검사를 하고, 정기 검사도 연 1회
실시하므로 그런 사계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처리제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잦은 불시 검사를 통해 품질을
유지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에서 개발된 유처리제는 농축형이 많아 실제로 쓸 때에는 물에 희석해 쓰므로 독성이 덜하고 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퍼리제가 독성이 있기는 하지만, 기름을 제거하는 데에 별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데방제당국의 고민이 있다. 환경처 해양보전과
노부호 과장은 “유처리제의 독성보다 기름 피해가 더 크므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두통과 같은 부작용이 두려워 감기약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기름 오염과 관련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번 광양만에서처럼 벙켜C유가 유출되었을 때는 원칙적으로 유처리제를 쓰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기름보다 더 끈끈하게 영켜붙어 있는 벙커C유를 분해하려면 많은 양이 필요하므로 오히려 더 해로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식장이나 환경적으로 중요한 곳이 오염될 염려가 있으면 유처리제를 쓰기도 한다. 기름 이동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름 사고가
났을 때 유처리제를 쓸 것이지, 얼마나 써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적인 판단이다. 유처리제를 쓸 때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해가 적은 유처리제를 개발하고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감시하는 것도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