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호’가 연안을 벗어나기도 전에 ‘공익자금’이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할 위기에 빠졌다.
ABC협회라는 같은 사안을 다루는 신문사들의 시각은 극단적으로 갈라져 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가
‘신문 부수 공사 제도, 官주도 언론통제 의혹 짙다’‘ABC협회 중립성 논란, 공익자금 의존 신뢰성 의문’ 등의 제목으로 ABC협회의 운영
방식을 비판한 반면 <조선일보>는 여러 기사와 사설을 통해 ABC협회를 옹호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한국ABC협회가 △공익자금을 받음으로써 정부의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고
△23명에 불과한 ABC 직원으로 복잡다단한 신문 부수 체계를 조사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BC 협회에 실사를 신청하지 않은
대다수 일간지들의 보도도 이와 비슷한 논조였다.
감정 싸움으로까지 번질 조짐 이에 반해 <조선일보>는‘ABC의 ABC’라는 사설에서‘광고공사의 공익자금이라는
것은 정부의 돈, 즉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방송매체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에게서 거둔 돈으로 공익에 쓰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면서
ABC협회가 정부의 지원금으로 운영된다는 주장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공익자금 논란이 계속되자 서정우 한국 ABC협회 회장은 10월26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공익자금을 지원받게 된 것은
신문사?광고주?광고대행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와 총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하고“한국ABC협회는 어떤 경우에도 공익성과 중립성이 훼손된 적이
없는 독립 기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가라앉기는커녕 두 거대 신문사 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였다. 한편은 다른 한편에
대해 ABC를‘사세 과시의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고 비판했고, 다른 한편은‘평소 부풀려 놓은 부수를 공개하기가 부끄러울 것’이라고
비꼬았다.
많은 언론계 인사들은 이러한 논란이 본질과는 거리가 먼 지엽적인 논쟁에 불과하다고 본다. 정진석
교수(한국외국어대·신문방송학)는“한국ABC협회의 운영자금 대부분을 공익자금으로 충당하게 된 데에는 신문사들의 책임이 크다. 신문사들이 운영자금을
내는 데는 인색하면서 공익자금만 타박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또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는 20년 전부터 되풀이돼온
변명이다. 일단 실시하면서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논의할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다”라고 강조했다.
강준만 교수(전북대·신문방송학)는 좀더 신중한 입장이다. 현재의 한국 시장 환경에서는 발행부수 공사의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발행 부수 많은 신문이 곧 좋은 신문은 아니다. 공사를 실시하기 전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것이
강교수의 주장이다. 사실 국내 신문 시장의 유통구조상 중소 언론사나 신생 언론사가 거미줄 같은 배급망을 갖춘 기존 거대 언론사와 부수 경쟁을
벌일 수는 없는 형편이다.
강교수는 발행부수를 효율적으로 공사할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가칭‘신문 배급공사’ 설립을 주장한다. 모든 신문의 판로를 이 기구로
일원화하면 발행부수 공사 실시의 기술적 어려움이나 일부 언론사의 반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10월20일 공보처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공보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불거졌다. 민주당의 박지원 의원은 이 날
질의에서, 발행부수 공사(公査)를 목적으로 세워진 한국ABC협회가 설립 당시 정부로부터 2억6천4백만원을 지원받은 이래 지금까지 매년 4억원
이상씩을 지원받아 운영예산의 77%를 충당해왔다면서“정부가 ABC협회를 통해 언론을 교묘하게 장악하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따졌다. 같은 당의
국종남 의원도 가세했다.
오인환 공보처장관은 이에 대해“한국 ABC협회가 공익자금으로 운영돼 공익성 중립성 신뢰성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앞으로 발행사?광고주?광고대행사가 자율적으로 ABC협회를 설립해 운영하게 되면 현재의 기구는 문을 닫게 하겠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오장관은 바로 다음날“한국ABC협회를 현행대로 두되, 운영자금을 회원사의 회비로 전액 충당해 운영의 자율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발언
수위를 낮추었다.
ABC협회의 운영자금이 정부로부터 나오고 있는 점은 고쳐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정부에 언론 통제 의도가 있다’는 식의 비판을
통해서가 아니라 35개 일간지 회원사를 비롯한 1백8개 회원사가 자발적?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金相顯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