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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정기 정치인 여론조사

 ‘정치 불신’의 계절이 시작된  는 이미 오래다. 더욱이 김영삼 정부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 앞에서 정치권이 방향 감각을 잃은 채 표류하는 바람에 ‘정치 실종’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최근 민자당의 계파 갈등을 두고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는 이야기도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본다면 정치라기보다는 계파 간의 세 싸움이다.  그러나 불신의 대상인 정치인도 할말은 있다. 국민과 언론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각도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정치인 불신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이 지녀야 할 기본 덕목인 도덕성·능력·대중성 측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치인은 있는가. 있다면 어떤 인물이며, 어떤 정치적 요인이 정치인의 인기를 좌우하는가.  ≪시사저널≫은 ‘리서치 앤 리서치(R&R)'와의 공동 여론조사를 통해 일반 국민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긍정적인 접근’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보기 위해서이다.

박찬종, 정치인 자질 각 분야서 선두
민주계 실세들 대중적 기반 취약, 야권은 소장파 거론 … 국민들 ‘냉정한 평가’에 인색
 이번 정치인 여론조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신정당 朴燦鍾 대표의 약진이다(도표참조). 그는 도덕성, 능력, 호감도 각 항목에서 단연 선두로 꼽히면서 종합 평가 1위를 차지했다. 물론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가장 많은 응답자들이 박찬종 신정당 대표를 가장 도덕적이고 능력있고 호감가는 인물로 지목한 것이다.

 박대표의 약진은‘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 말고는 유일하게 이익을 본 정치인’이라는 그동안의 세평이 결코 허구적인 것이 아님을 입증한 결과다. 그러나 그가 속한 신정당의 한계와 언론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놀라운 결과이기도 하다.  우선 그는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1인국회의원’ 정당의 대표라는 취약점 때문에 대통령 선거 직후부터 줄곧 언론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당 대표이면서도 국회법상 무소속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당 대표 연설 기회는 물론 본회의 대정부 질의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외무통일위 위원으로 활약한 국정감사에서도 “핵 재처리 시설 보유 불가를 천명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수정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 의견을 내놓았지만, 언론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그는 ‘정치적 실종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박대표의 약진이 가능했던 요인은 여러 각도에서 짚어볼 수 있다.  우선 두 차례의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과 김영삼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과정에서 ‘깨끗한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아졌고, 박대표의 이미지가 이런 시대적 요구와 정서에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깨끗한 정치와 세대교체’를 내세웠던 박후보는 저서 판매 대금과 지지자들의 모금으로 선거 자금을 조달하는 등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총선 자금 13억원의 변제’를 둘러싸고 신정당 전 사무총장과의 송사에 휘말린 그는 최근 2심에서도 패소했고, 이에 따라 올 연말까지 방배동 집을 내주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러나 이 송사는 오히려 박대표의 ‘궁색한 자금사정’을 여실히 대변함으로써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깨끗한 이미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호감도면에서의 1위는 대통령선거전에서의 일관된 태도, 끊임없는 대중과의 직간접접촉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대통령 선거전에서‘노상 토론회’라는 특이한 대중 접촉 방식을 개발했던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잇따른 몇 차례의 보궐선거를 발로 뛰면서, 서울 수도권 지역과 부산 경남 일원에만 머물렀던 지명도와 지역 기반을 상당히 넓혀 놓았다. 텔레비전 광고 출연도 대중성을 높이는 데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를 향한 정치권의 평가는 대중들의 평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독불장군’ ‘모난 정치인’이라는 개인적 평가가 우선 그러하고, 신정당 간판 아래 자신을 빼놓고는 단 한명도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정치권이 그의 인기를 두고 ‘거품 인기’라고 일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선거자금 소송’건만 하더라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대표의 능력 부족과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를 보여 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대중 전 대표 ‘은퇴 선언’ 이후에도 2위
 최근 신정당은 무소속 의원들과의 공동 연대, 젊고 참신한 정치 지망생들의 흡수를 통해 ‘제3 정치세력’을 규합해서 95년 지자제 선거에 승부를 건다는 전략을 세우고 조직정비와 비서진 확충을 서두르고 있다.

 평가 종합에서 2위를 기록한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는 각 항목에서도 모두 2위로 언급 됐지만 박대표와의 격차는 상당히 벌어져 있다(도표 참조).  그러나 김 전대표의 경우 나타난 결과만으로 그에 대한 대중적 평가를 계량하기는 다소 어렵다. 우선 ≪시사저널≫ 여론조사는 “현재 활동중인 정치인”의 범주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김 전대표를 “현재 활동중인 정치인”으로 보느냐,“은퇴한 정치인”으로 간주 하느냐는 전적으로 응답자의 판단에 맡겨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결과는 그를 “현재 활동 중인 정치인”이라고 여기는 응답자들의 평가만 포함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뚜렷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김 전대표의 아성인 광주?전라남북도 지역에서의 평가는 다른 지역에서의 평가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 지역 응답자들은 김 전대표는 도덕성(22.5%) 능력(22.5%) 호감도(21.3%) 등 모든 항목에서 1위로 꼽았다. 이는 김 전대표를 평가하는 전국 평가치(‘도덕성’ 6.2%, ‘능력’7.0%, 호감 7.0%)를 훨씬 웃도는 결과로‘은퇴 선언’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탄탄한 지역 기반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각 항목에서 김종필 대표와 김윤환 의원 등 여권 인물과 이철, 노무현, 이해찬, 홍사덕 의원 등 이른바‘야권 소장파’‘청문회 스타’들이 두루 거론되고 있다. 반면 벌써부터 제2인자 혹은 잠재적인 차기 경쟁 양상까지 드러내고 있는, 이른바‘민주계 실세’들은 정치권 내의 비중에 견주어 예상외로 낮은 지목 빈도를 보였다. 성충권의 역학관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대중적 기반은 아직 취약하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활약한‘초재선 무명 의원’들도 여전히 국민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새로운’인물로는 도덕성에서 12위(0.8%), 호감도에서 14위(0.8%)를 기록한 민주당 박지원 대변인 정도가 눈에 띨 뿐이다. 이는 뚜렷한 정치 이슈가 없었던 탓도 있지만, 일반 국민의 관심과 호감이‘의정활동’을 기준으로 형성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응답자들은 비슷한 인물을 평가 척도가 다른 각 항목에서 거의 순위 변동 없이 지목하고 있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결과는 일반 국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꼼꼼한 관찰이나 각론적 평가보다는 막연한 호감이나 지지도 차원에 머무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직도 정치는 무관심과 불신의 場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은 정치인과 언론은 물론은 물론‘냉정한 관찰과 평가’에 인색한 국민에게도 있는 것같다.
 徐明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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