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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색채연구소 ‘KS한국표준색표집’발간…일련번호 매겨 전화로도 선택 가능

 “파란색이요? 도대체 어떤 파란색 말씀이신지….” 페인트점을 하는 김모모(39·서울 강남구 신사동)씨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여름철 실내장식을 위해 가정집 베란다의 도색주문을 받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떤 농도의 파란색을 원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색의 잣대역할을 할 ‘KS한국표준색표집’이 발간됐기 때문이다. 정확한 색채전달체계를 국내에 정착시키기 위해 공업진흥청의 승인을 거쳐 KBS 한국색채연구소에 의해 제작된 이 책은 산업계 및 교육계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1천5백4가지의 표준색상을 담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표준색상제도인 ‘먼셀컬러시스템’이나 일본의 ‘JIS표준색표’에 의존해왔던 국내 색채업계로서는 때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의 감각과 기술로 ‘색채의 독립’을 이룩한 셈이다.

20가지색을 기본으로 세분화
 이 색표집 제작은 컬러텔레비전 등장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색채연구소(소장 韓東?)는 컬러텔레비전 보급 이후 국민이 좋아하는 색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만들고자 80년, 84년, 89년 3회에 걸쳐 한국인의 색채의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원색이면 무조건 좋아하고 우중충한 색은 무조건 싫어하는 것으로 나타나 색에 대한 계도를 위해 색표집 발간을 서두르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컬러텔레비전 무대의 ‘탈 스튜디오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사회 전체 환경을 고려한 색의 연구가 더욱 실해졌다는 설명이다.

 이번 색표집에서 분류된 1천5백4가지의 색상은 20가지 색을 기본으로 하여 색상·명도·채도 등 색의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세분화한 것이다. 각각의 색에는 국제적인 공통기호와 함께 국내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일련번호를 매겼다. 따라서 색에 대한 전문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원하는 색채를 고른 뒤 전화나 팩시밀리를 이용해 간단히 색상기호나 번호만 알려주면 색체에 대해 정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으므로 일일이 색견본을 보내야 했던 이제까지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색의 전달체계 미비로 인한 업체간의 분쟁이나 해외수주 제품의 색상 클레임이 크게 줄고 상품 경쟁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실 산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신제품을 개발할 때 색채에 승부를 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3년 전 냉장고의 실내장식 효과를 중요시하여 종래의 흰빛에서 과감히 탈피, ‘검은색 냉장고’를 개발했던 금성사 디자인 종합연구소 ??? 부장은 검은 냉장고가 주는 상품 이미지가 큰 효과를 보았다고 전한다. “그 당시 유행색을 겨냥했던 것이 적중했습니다. 소비자의 안목이 빠른 속도로 앞서가고 있으니 소비자를 잡으려면 색깔전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신부장은 전자레인지 밥솥 식기건조기 등 검은색 제품시리즈를 내놓았는데 식기건조기는 평소 매출의 3~4배까지 늘었다고 전한다.

색채 일원화로 소비자 혼란 막아
 이러한 색깔 있는 상품 개발은 필연적으로 자사만의 독특한 색표집을 만들게 하는데는 일조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회사마다 업종마다 제각기 다른 색표집을 만들게 함으로써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색의 혼란을 가증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고려화학 ??? 상무이사는 “페인트의 경우 색깔이 일원화되어 있지 않고 각사마다 자체적인 색상표에 의한 고유 색깔을 만들어 써왔다”면서 자동차의 경우 문이 망가져 도색을 했을 경우 누덕누덕 색을 기운 듯한 것도 각 회사의 표준색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각 회사가 경쟁적으로 새 차를 개발하면서 색깔 개발도 판매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이번의 색채 일원화작업은 기업으로서는 하청업자의 용역을 쉽게 해주기도 하지만 소비자에게도 안정된 색상을 고를 수 있게 하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내다본다.

 현재 전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색채 시스템은 크게 미국의 먼셀시스템과 독일의 오스트발트시스템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의 KS한국표준색표집은 먼셀시스템을 기본골격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한소장은 최첨단 장비인 미국 ACS사의 컬러컴퓨터 방식을 도입하여 색의 오차를 최소화, 해외의 어느 공업규격보다 정확하게 제작되었다고 자랑한다. 또한 색표집의 가격을 낮추기 위하여 자동차보수용 라카를 틀에 부어 찍어내는 ‘압착식 특수공법’으로 인쇄한 덕택에 일일이 색채종이를 손으로 붙여 제작하는 외국의 색표집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12만원)으로 판매되어 중소업자들에게도 보급될 수 있다고 내다본다(미국 1백50만원, 일본 64만원). 한국색채연구소는 앞으로 표준색을 페인트로 재현할 수 있도록 색배합 방법을 수치화한 ‘페인트 컬러 배합집’을 비롯하여 ‘인쇄컬러 배합집’, ‘실용배색사전’, ‘한국전통색 사전’도 펴낼 예정이다.  그러나 색채의 혁명을 이룩했다는 이번 색표집의 활용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약’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달력 등을 인쇄하는 성인문화사에서 근무하는 ???(무역부)씨는 “외국 바이어의 주문품은 현재 2차 교정을 거쳐 완성품을 보내지만 중요한 인쇄물일 경우 외국에서 바이어가 직접 내방할 때도 있다”면서 국내색표집이 외국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현재의 색표집은 자동차나 철제용품, 가전제품에는 활용할 수 있지만 섬유나 벽지 등 재료가 다를 경우 색감에 차이가 나 별도의 후속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전국민이 얼마나 색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등교육 과정에서 문교부가 지정한 20색만을 기본으로 하는 단순한 색채교육만을 받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환경은 무시한 채 지나치게 강렬한 원색으로 치장, 균형을 깨뜨리는 색의 공해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색채에 대한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익대 공업디자인과 韓道龍 교수는 “색표집은 색의 문맹으로부터 우리를 개안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면서 앞으로 색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져 TORANS화를 주도하는 모든 산업체에서 사용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색채환경을 가꾸는 것은 바로 삶의 질을 높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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