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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국정원 도청의 진실
“호미로 막았으면 될 일을 가래로도 못 막을 사태로 번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국정원 도청 파문에 대한 한 전직 국정원 간부의 탄식이다. DJ 정부 말기 신 건 국정원장이 진작 도·감청 장비와 기술 도입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를 국내 사찰에 잘못 사용한 점에 대해 솔직히 시인했더라면 사태를 이렇게 키우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이다. 검찰 도청수사팀은 최근 국정원 직원의 집에서 DJ 정부 시절 국정원이 행한 불법 도청 녹음 테이프를 압수했다. 또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이 연달아 폭로한 도청 문건 내용이 국정원에서 유출되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당시 신 건 국정원장은 한나라당 폭로 문건에 대해 ‘국정원과는 전혀 무관한 괴문서’라고 일축했다. 대선을 앞둔 민주당도 폭로 문건에 대해 정형근 의원 등 한나라당 내 ‘공작 전문가’가 날조한 자작극이라고 역공을 폈다. 때문에 이번 검찰 수사 내용은 그동안 국정원이 국민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을 공식 확인하는 셈이 된다.
2002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한나라당은 세 차례 도청 문건을 폭로했다. 포문은 그 해 9월25일 정형근 의원이 열었다. 그는 당시 국감장에서 국정 도청 문건을 입수했다면서 공개했다.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과 일본의 대북 사업가 요시다 다케시 사장이 그 해 8월에 통화한 대북 지원 사업 관련 내용이었다. 요시다는 현대가 북한 금강산 관광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 매개 역할을 한 인물로서 남북 정상회담 성사에도 깊이 간여해 대북 송검 특검 때도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정형근 의원은 이어 대한생명 인수 문제를 놓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김현섭 청와대 비서관 사이에 2002년 9월에 오간 통화 내용도 국정원 도청 자료라고 폭로했다.
이어서 한나라당은 공식 대선 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2002년 11월28일 김영일 사무총장이 나서서 국정원 도청 문건을 추가 폭로했다. 당시 도청 문건은 A4용지 27장 분량에 여야 의원 24명, 언론사 사장 2명, 기자 8명 등 총 39명의 통화 내역을 담고 있었다. 2002년 1~3월 국정원이 도청했다는 이 자료에서 거명된 주요 도청 대상 인물들은 민주당 김원기 고문, 김정길 전 의원, 이강래·이인제·박상천 의원과 박권상 KBS 사장, 한나라당 이부영·서상섭 의원 등이었다. 내용은 주로 대선 후보 경선에 관한 통화였다.
그러면 당시 국정원 도청 내용을 유출한 당사자는 누구일까. 한나라당은 그동안 도청 메모 전달자가 밝힐 수 없는 국정원 고위 간부라고만 주장해왔다. 보통 도청 자료는 과학보안국이 광범위하게 생산해 이를 국내 담당 파트 각 부서 도청 메모 담당자에게 컴퓨터 단말기로 띄운다. 메모 담당자는 이 내용을 압축 정리해 부서장에게 보고하고, 부서장은 이를 본 뒤 부속실에 있는 보좌원을 시켜 각 부서장과 과장들에게 필사해서 회람시키도록 한다. 따라서 한나라당에 넘어간 도청 내용은 바로 국내 파트 메모 담당자나 부서장, 회람 보좌원 가운데 한 곳에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국내 파트에서는 국정원에 남아 있던 정형근 라인이 가장 의심을 받고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내 담당 차장으로 근무했던 정형근 의원 아래는 충성파가 밀집해 있었다. 실제로 정의원은 이들을 통해 빼낸 것으로 보이는 정보를 국회에서 폭로해 ‘폭로 전문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정형근 의원이 국내담당 차장이던 시절 보좌관을 지낸 심복으로 DJ 정부에서 과학보안국장을 지낸 ㅇ씨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이건모 전 감찰실장도 유출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이다. 2002년 초 신 건 원장이 국정원장에 취임한 직후 광주지부장으로 좌천되었던 그는 대선 직전 내부 감찰 정보를 부하인 심 아무개 과장을 통해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에게 전달하도록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적발되어 국정원 직원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이건모씨가 한나라당에 건넨 자료는 도청 문건 자체라기보다는 한나라당에 도청 자료를 유출한 데 대해 국정원이 대대적으로 내부 감찰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이씨 스스로가 그 이전의 도청자료 유출에도 깊이 간여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으로서, 일련의 도청 자료를 국정원 고위 간부로부터 받았다는 한나라당의 주장과도 맥이 닿는다.
언뜻 보면 이번에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내용은 지난 8월5일 국정원이 대국민 사과 성명을 통해 ‘휴대전화 통화 도청은 가능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도청이 있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별것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꼴이다. DJ측과 국정원, 참여정부는 물론이고 한나라당과 검찰(서울지검 공안2부)도 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선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불법 도청이 이루어졌지만 2002년 3월까지로 국한되었다는 국정원 발표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 문건에는 2002년 8월과 9월에 이루어진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국민 사과 후 DJ가 입원하고, 역대 국정원장들이 모여 반발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정부 시절 도청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책임질 일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8월25일 김승규 국정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도청은 국가 기관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또 DJ 정부 시절 국정원 도청은 주로 전·현직 직원을 상대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정치적 고육책이기는 했겠지만 도청의 본질에서 한참 비켜난 주장이다. 국정원 직원을 상대로 한 도청은 핵심 부서인 과학보안국이 담당했다기보다는 감찰실 산하 (직원 상대) 감청팀이 수행한다. 특히 휴대전화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거짓 주장하던 국정원은 2002년 가을 한나라당이 연달아 도청 문건을 입수해 폭로하자 유출자 색출 차원에서 전체 국정원 직원의 휴대전화 고유 번호인 프로토콜 번호를 적어내게 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도청을 했다. 따라서 국정원의 주장은 이런 도·감청 메커니즘을 일반인이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본질적이고 광범위한 과학보안국의 도청에 대한 예봉을 피하려는 호도책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도 검찰이 연 판도라의 상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정형근 의원은 지난 7월 불거진 도청 파문 이루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도청 문건을 받아 폭로했던 그는 줄곧 더 많은 도청 자료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호언해 왔다. 도청 자료들은 국정원이 도청을 중지했다고 주장하는 2002년 3월 이후의 것들이다. 그러나 이를 입증해야 할 한나라당과 정의원은 유출 경로 수사라는 통신비밀보호법의 덫에 걸려 있다.
검찰의 처지도 홀가분하지만은 않다. 서울지검 공안2부는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 3월 즉각 한나라당의 폭로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유출 경로 파악이 주된 수사 방향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을 덮었다. 2년여 동안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공안부는 지난 4월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도청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결정했고, 휴대전화 통화 도청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8월5일 국정원의 대국민 사과로 검찰 수사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재 검찰로서는 이 수치를 만회해야 할 처지이다. 또 홍석조 광주고검장을 매개로 한 일부 검사들의 삼성 떡값 수수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도 못하다. 검찰 조직에 위기 의식을 부른 사태 전개가 역설적으로 검찰 수사를 도청 정국의 뇌관으로 작용시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현재 검찰은 대선 직전 국정원 도청 문건을 폭로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과 김영일·이부영 전 의원을 소환해 도청 파문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방침이다.
정희상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