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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개정 관련 재경부 비공개 문건 단독 입수 ‘승인 기준 변경해 삼성카드·삼성생명 보호 시도’ 의혹

 
때리기냐, 감싸기냐.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의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위반 여부를 둘러싸고 국정감사장에서 공방이 격렬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삼성 때리기가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시민단체가 합심해 참여정부의 좌파적 성향인 반기업 정서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김무성 사무총장). 반면 한나라당이 삼성 때리기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들과 참여연대는 삼성이 금산법을 위반하고도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를 정부가 법률 개정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비호하고 있다며, ‘삼성 감싸기론’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

과연 정부는 삼성의 이해관계에 맞게 정부안을 만든 것일까. 양측 공방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금산법 개정안 전후 과정을 살필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열린우리당 박영선의원실을 통해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10월12일 작성한 비공개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금산법 담당 파트인 재경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가 작성한 ‘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개정 내용’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정부가 금산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지난해 11월29일보다 40여일 앞서 작성된 것이어서 정부의 개정 방향을 드러낸 최초의 문건으로 보인다.

개정 배경과 주요 개정 내용 등으로 기술된 이 5쪽짜리 비공개 문건과 정부의 공개 문건인 입법예고안, 이에 앞서 개정 방향을 밝힌 11월18일자 재경부 보도자료를 비교하면 개정을 추진한 배경과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서 별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문제는 비공개 문건 마지막 장인 1쪽 분량의 참고 자료에 모아진다. 제목이 ‘승인기준 변경’인데, 이것은 금감위가 금산법을 운영할 때의 지침인 시행령 개정 사안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재경부는  ‘현행 승인 기준(시행령 6조)이 은행법이나 공정거래법 같은 다른 법령에 비해 과도하게 엄격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정거래법(11조)은 금융 계열사의 상장·등록한 비금융 계열사에 대해 30%(개정안 15%)까지 주식 소유 및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고 있고, 은행법도 기업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금감위 숭인을 얻어 15% 이상 비금융회사 주식 취득을 허용하고 있지만, 금산법 24조 시행령의 승인 기준(1997년 1월 제정)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산법은 금융 계열사가 다른 비금융 계열사 주식을 5% 이상 소유하는 것을 실질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삼성측이 의뢰한 법무법인 의견서도 참고

이에 따라 재경부는 두 가지 개정 방향을 제시했다. 공정거래법 11조에 따른 의결권 행사를 위해 주식을 소유하는 경우에는 금감위가 승인할 수 있도록 승인 기준을 보완하며,  계열분리·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경우에도 금감위가 금융기관의 비금융회사 주식 취득을 승인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 대해 몇몇 법률 전문가들에게 해석을 의뢰한 결과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의견은 이런 것이었다. 두 예외 조항의 타당성을 따지기도 전에 각각 입법 취지가 다른 세 가지 법률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 법이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소유 비율을 맞비교하는 것은 법리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통용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시행령 개정 작업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정부는 7월5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 문건의 시행령 개정 방향을 실제로 꺼내들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해 10월 재경부가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에 대한 지배를 실질적으로 금지한다는 금산법 24조의 입법 취지를 시행령에서 승인 기준을 변경해 사실상 무력화 혹은 폐지하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가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었을까. 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현행 승인 기준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금감위의 승인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부칙 신설뿐 아니라 승인 기준 자체를 완화하려고 기도한 것이다. 위법 행위를 합법화해 주는 삼성 봐주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고 비난했다(현행 승인 기준은 경쟁 제한성이 없어야 하고 금융사가 비금융사를 사실상 지배하지 않아야 한다).

 
법률 위반 시비로 삼성이 지난해부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금산법이 세상에 나오게 된 데는 역설적이게도 삼성이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 금융사의 1993년과 1996년 두 차례 기아자동차 주식 매집이 직접 발단이 된 것이다. 금산법은 1991년 ‘금융기관의 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었다가 1997년 1월 전문 개정이 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삼성을 옥죄는 문제의 24조가 신설 발효된 것도 그 해 3월이었다. 2003년 5월까지 여덞 차례 개정되었는데, 이번에 아홉 번째 손질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금산법이라는 매우 전문적인 법률이 세간에 회자된 계기 역시 삼성이 제공했다. 지난해 2월 삼성카드가 삼성캐피탈을 합병하면서 그 해 4월께 금산법 위반 가능성이 본격 제기된 것이다. 1998년 말 중앙일보가 삼성에서 계열 분리하는 과정에서 삼성카드가 에버랜드 주식 10%를 갖게 되었고, 1999년 유상 증자와 실권주 인수, 그리고 2004년 2월 에버랜드 지분 11.6%를 보유한 삼성캐피탈을 합병하면서 지분이 25.6%로 늘어났다. 5월에는 금감위에 의해 5% 이상 소유 한도를 초과해 법률 위반임이 공식화했고, 7월에는 매각명령 검토 움직임도 포착되었다.  이 때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뿐 아니라 현대캐피탈 등 11개 회사가 위반 상태임이 드러났지만, 현대케피탈이 3년에 걸쳐 매각하는 등 현재까지 이 시비에 휘발린 금융사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뿐이다.

2003년 7월 금감위는 금산법을 어겨가며 아남반도체 지분 9.67%를 취득한 동부화재와 동부생명에 대해 이들의 설립 근거법인 보험업법을 들어 적극적으로 법을 집행했지만 어쩐 일인지 이 선례를 삼성카드에는 적용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법 제정 이전에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고, 삼성카드만 지난해 8월 초과 지분을 처분하지 않으면서 의결권을 포기하겠다는 계획서를 금감위에 낸 상태다.

지난 6월1일 금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박영선 의원은 “왜 삼성만 두들기냐고 비난하는데, 금산법과 관련해 현재까지도 문제가 되는 금융사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말고 어디가 또 있느냐”라고 말했다, 정부 정책과 법질서 준수 여부를 감시해야 하는 국감장에서 공방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여당 내에 에버랜드·카드 ‘분리 대응론’ 솔솔

실제로 정부가 법 개정 과정에서 삼성 사안을 고려했다는 흔적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좋은 예가 국감장을 강타한 부칙을 둘러싼 공방이다. 지난해 11월29일 정부 입법 예고안과 올 7월5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확정된 정부안의 부칙 내용은 사뭇 달랐다. 재경부는 지난 8월8일과 9월23일 보도 해명 자료에서 입법 예고안의 부칙 조항이 2개 항에서 6개 항으로 늘어난 것에 대해 법제처 심사 과정에서 당초 입법 예고된 부칙 조항의 내용을 더 명확히 기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옴에 따라 그 내용을 풀어 쓴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 입법 예고시 부칙 2조 단서의 본문을 부칙 4조 1항으로, 괄호 내용을 2항으로 분리한 것이므로 입법 예고 때 없던 부칙을 끼워넣은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뉘앙스가 다르기는 해도 이 해명을 일리 있다고 보더라도 재경부는 3조·5조·6조를 신설한 것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을 뿐더러 국무회의 통과 직후인 7월8일자 보도 해명 자료에서 국무회의 통과 부칙 조항과 입법예고안 부칙이 내용 면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변했다.
     
 
과연 그럴까. 특히 부칙 3조 2항은 ‘금감위로부터 승인받은 한도를 금감위 재승인 없이 초과하여 취득한 경우 그 초과한 주식 소유 비율을 금감위로부터 승인받은 것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이른바 승인 의제 조항이다. 이 부칙이 국회에서 살아 남는다면 삼성생명이 지난해와 올해 금감위 승인 없이 추가 취득한 지분(0.25%)이 자동 합법화하게 된다. 이미 입법예고안에 있었고 이에 대해 관련 부처는 물론 이해관계자로부터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4조 2항으로 재경부는 삼성생명의 초과 지분 보유 상태를 합법화해주고 있다. 1997년 3월 금산법 발효 당시 금산법 또는 설립 근거법에 의한 승인 없이 한도를 초과하여 보유한 것에 대해 ‘동법 시행 당시의 주식소유 비율로 본다’고 적시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당시 삼성전자 소유 비율이 8.55%여서 현재 1.3% 늘릴 여지마저 생겼다(현 7.23%).

박영선 의원 대표 발의안과 정부안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정부는 초과 지분 소유 상태를 의결권 제한으로 그쳤지만, 박의원은 5년 유예 기간을 두어 매각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이른바 소급 입법 논란이 가열된다. 이 논란은 과거에 끝난 위법 행위에 대해 현재 새 법을 만들어 과거 행위를 규제하는 진정 소급 입법이냐,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는 위반 행위에 대해 현재 새 법을 만들어 과거 행위를 규제하는 부진정 소급 입법이냐로 대별된다. 법조계는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진정 소급은 위헌 소지가 있어 허용하지 않지만, 부진정은 소급 입법이 아니어서 위헌 소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법 시행 이전에 일어난 행위에 대해서까지 매각 명령을 내리는 것은 소급 입법에 해당하므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견해이고, 현재까지 위반 행위가 지속되고 있으므로 소급 입법이 아니라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소급 입법임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부가 지난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각각 김&장과 법무법인 율촌에 의뢰한 검토의견서를 참고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진 것이다. 김&장은 처분 명령을 소급 적용하는 것은 진정 소급 입법에 해당해 위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으며, 율촌은 의결권 제한도 위헌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 금감위가 자체 의뢰한 법무법인 광장의 의견서는 입법 예고 하루 뒤인 지난해 11월30일 나와 정부안에 반영될 수 없었고, 금감원 법무팀의 의견은 재경부에 전달조차 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그 이유를 추궁받자 금감위의 한 국장은 “우리 법무팀은 실력이 없다”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해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재경부는 9월27일 보도 해명 자료에서 삼성과 삼성측이 의뢰한 법무법인의 의견만을 좇아 개정안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정부 안이 이들 의견과 동일하지 않으며 법무법인 ‘광장’의 의견도 처분 명령을 ‘전제 없이’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광장은 의결권 행사만으로 입법 목적(금융기관을 이용한 기업 지배 방지)을 달성하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여 매각 명령을 규정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더 적극적으로 법 해석을 시도한 금감원 법무팀의 의견은 왜 철저하게 배제했느냐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지난해 9월 금감원 변호사 네 사람의 이름으로 나온  검토의견서에 따르면, 소급 입법이란 새 입법으로 과거의 사실 관계 혹은 법률 관계에 적용할 때 문제가 되는데, 금산법 24조는 이미 승인 없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한 경우를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 법을 개정한다고 해서 새로운 사실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므로 헌법상 허용되는 ‘부진정 소급 입법’에 해당한다. 또 개정법 시행 후 1년 유예기간이 흐른 후에 시정 조처를 하겠다는 것은 소급 입법에 따른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논란의 끝은 초과 소유 상태를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만으로 입법 취지를 달성할 수 있느냐로 모아진다. 물론 삼성과 정부는 의결권 행사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정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송호창 변호사는 금융사의 비금융사 지배 금지라는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위법 행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된다는 점에서 초과 지분 상태를 해소하는 유일한 길은 강제 매각 명령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카드에서 보듯이 의결권을 제한해도 얼마든지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안과 박영선 의원 대표 발의안, 그리고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의 입법청원안이 상정되어 있다. 이 세 가지 안은 국정감사가 끝난 10월 중순부터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병합 심리될 예정인데 상당한 수정이 가해질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모법의 조문뿐 아니라 시행령의 승인 기준 등을 모법에 넣는 수정안도 제기될 것으로 관측된다. 미공개 문건이 드러내듯이 국회 의결 절차가 필요 없이  시행령에 승인 기준 같은 중요 사항을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여당은 10월 중순 이후 정책 의원총회를 열어 전체 의원을 상대로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내부 의견 수렴 절차를 갖고 당론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여당에서 우려할만한 흐름이 나온다. 삼성생명은 문제 삼지 않되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초과 소유분만 팔게 하자는 이른바 ‘분리대응론’이다. 삼성 처지에서는 둘 다 사수하지 못한다면 양보할 수 있는 카드가 삼성카드일 것이다. 박의원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삼성생명은 삼선전자에 대한 초과 지분 2.23%를 팔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이건희 회장 일가와 계열사가 갖고 있는 삼성전자 내부 지분율은 16.05%에서 13.82%로 떨어진다. 지난해 삼성이 그토록 저지하려 했던 공정거래법 11조 의결권 제한 조항으로 내부 지분율이 0.27% 떨어지는 것과 비교하면 참여연대가 표현하듯 사활적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삼성카드의 경우는 한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에버랜드는 이재용 상무 등 이회장 일가 지분이 50%를 넘고 여기다 삼성카드 등 계열사 지분을 합하면 내부 지분율이 무려 94.48%에 달한다. 초과 지분 20.6%의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해도 지배 구조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여권의 분리 대응 움직임에 대해 심상정 의원(민노당·재경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위반 상태임이 분명하므로 이 상태를 예외 없이 해소하게 하는 것이 깔끔하다. 분리대응론 같은 꼼수로 이 문제를 풀면 안된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당장 10월 초 정무위에 이어 재경위 국감에서 금산법 공방이 벌어지겠지만, 개정안의 윤곽이 드러날 11월 이후 삼성과 국회의 진검승부가 여의도를 요동하게 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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