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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아이팟 신드롬, 사회학 연구 주제로 떠올라

 
신문 저널리즘 강의 첫 시간. 강의실에 막 들어선 케네스 로저슨 교수의 얼굴에 흥분된 표정이 역력하다. 그는 짧은 말로 자신을 소개한 뒤 학생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알렸다. “연구비 허가가 났다. 여러분 모두 아이팟(iPod)을 받게 될 거야.” 학생들 사이에서 감탄사와 환호성이 터진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에 있는 듀크 대학은 이미 신입생 전원에게 20기가바이트(GB) 용량의 아이팟을 주기로 해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 측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몇몇 고학년 과정에도 ‘교육 목적’을 명분으로 아이팟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20GB라면 약 5천 곡의 노래를 담을 수 있는 대용량이다.

 대학 강의실에 아이팟을 끌어들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아닌가는  학생들과 교수 사이에서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아이팟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신중한 고려 없이 섣불리 신기술을 교육에 끌어들이는 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의 눈먼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계하는 쪽도 있다. 듀크 대학의 자체 조사 결과도 선뜻 어느 한 쪽 손을 들어주기 어렵게 나왔다.

 강의실에서 아이팟은 주로 녹음기 구실을 한다. 손으로 일일이 필기하는 대신 ‘육성 노트’로 아이팟을 활용하는 것이다. 발표용 자료를 수집하는 도구로 쓰거나, 좀더 정확한 인용을 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녹음하는 데도 널리 활용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아이팟은 공부와 무관한, 개인적인 오락과 여가 용도로 더 널리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듀크 대학의 한 교수는 “아이팟의 엄청난 용량을 간과하면 안된다. 이는 손바닥만한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다”라면서 무작정 나누어 주기 전에 그 가능성과 위험성, 적절한 용도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드렉셀 대학은 이같은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가을 학기에 교수진과 신입생들에게 아이팟을 지급하기로 결정하면서 듀크 대학보다 훨씬 더 꼼꼼히 계획을 세운 것이다. 교수들은 대학이 제공하는 보안 서버로 학습 과제, 독서물, 음성·음향 파일 등을 올리고, 학생들은 이를 아이팟에 내려받아 강의실·도서관·체육관 등 어디로든 가지고 다닐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끼리 ‘팟캐스팅’으로 소통하거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팟캐스팅(Podcasting)은 텍스트 대신 오디오 파일을 주 매개체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블로그 활동을 뜻한다.

“아이팟 잃은 뒤 일할 의욕도 잃었다”

 특히 북미 지역에서 아이팟은 이미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팟캐스팅을 비롯해 아이팟에 대해 열광하는 조류를 의미하는 ‘파디즘’(Poddism), 아이팟 애용자를 가리키는 ‘파디스’(Poddies) 같은 신조어들과 ‘나는 아이팟을 쓴다, 고로 존재한다’(iPod, therefore I am)라는 표현은 그러한 현상의 한 징표이다.

 
아이팟에 대한 과도한 열광과 집착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산발적으로 표출되어 오다가, 지난 7월 한 비극적인 사고로 정점을 이루었다. 일단의 10대들이 다른 10대들을 공격해 아이팟을 빼앗는 과정에서 16세의 크리스토퍼 로즈가 흉기에 찔려 살해된 것이다. 이 사건은 아이팟 제조사(애플 사)의 스티브 잡스 사장이 피해자 부모에게 직접 위로 전화를 한 뒤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아이팟 도난 사고가 잇따르자 뉴욕시 경찰은 휴대전화와 아이팟을 목표로 한 전철 범죄의 위험성을 공식 경고하고 나섰다.

아이팟의 유별난 사회적 파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이팟을 잃어버린 이들의 뒷얘기가 또 다른 안줏거리를 제공했다. 미국 휴스턴의 한 컴퓨터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제이슨 브래디(24)는 아이팟을 도난  당한 뒤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다며 일주일 휴가를 냈다. “도둑맞은 60GB짜리 아이팟에는 내가 거의 1년 동안 선곡해서 내려 받은 1만2천여 곡이 담겨 있다. 그걸 어떻게 다시 복원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제이슨과 같은 ‘파디’(Poddy)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인 개럿 스미스는 “아이팟을 사랑한다”라고 선언하듯 말한다. “아이팟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내 아이팟에 담긴 7천5백 곡 중 6천 곡이 인터넷으로 내려 받은 것인데, 아마 평생에 걸쳐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자랑한다.

또 다른 애용자 질리언은 자신이 아이팟 없이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 ‘아이팟 중독자’라고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즉각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일인지 모른다.” 그녀의 20GB짜리 아이팟에는 4천5백여 곡의 노래가 담겨 있다.

5년간 식지 않는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아이팟에 대한 남다른 열광은 비단 ‘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컨대 아이팟 전문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아이팟라운지’(www.ilounge.com)에는 3천7백 장 이상의 아이팟 사진이 실려 있다. 전세계 아이팟 애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것으로 스위스 알프스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사진, 호주 캔버라 국회의사당 지붕 위에 아이팟이 얹힌 듯한 사진, 그랜드캐넌을 배경으로 한 사진, 남극에서 아이팟을 들고 찍은 사진, 아이팟을 듣는 개 사진, 아이팟을 들고 참선하는 꼬마 사진, 음악 감상 삼매경에 빠진 비키니 차림의 여인 사진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이 사진들의 공통점은 아이팟이 주인공이라는 점. 아이팟에 대한 열광과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편 남성 잡지 <GQ>의 영국판 편집장 딜런 존스는 <나는 아이팟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블룸스버리 펴냄)라는 책에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곁들여 아이팟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그린다. 그는 심지어 아이팟의 사회적 파장을 불의 발견이나 바퀴의 발명에 견주기까지 한다. 그는 ‘처음에는 불이 있었고, 바퀴가 고안되었으며, 페니실린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에 축복이 될 차세대의 위대한 발명품 아이팟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고 세련되고 매혹적인 외양에 1만 곡 이상의 노래를 담을 수 있는 대용량의 아이팟은 전세계의 음악팬과 기기 애호가 들을 열광시켰다. 인디 록을 즐기는 대학생들로부터 십대 힙합 팬, 나이든 재즈 팬들, 클래식 애호가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아이팟에 매료되었다. 이처럼 모든 연령층과 기호층을 이음매 없이 아우른 테크놀로지는 일찍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2001년 처음 세상에 나온 이래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아이팟은 마침내 학계의 주목도 받기 시작했다. 개인용 스테레오 기기의 사회적 영향을 구명하는 데 주력해 온 영국 서섹스 대학의 마이클 불 박사가 아이팟 이용자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사회성의 유동화: 도회적 경험에 대한 음향 기술의 영향>(Mobilizing the Social: Sound Technology in Urban Experience)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곧 펴낼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 결과는 아이팟 이용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아이팟을 이용하는지, 또 그를 일상에 어떻게 접목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아이팟은 과연 새로운 사회 현상일까? 마이크로소프트나 삼성, 혹은 소니의 다른 유사 제품들에 의해 곧 사라질 거품은 아닐까? 첨단 개인용 컴퓨터의 ‘약효’가 채 6개월을 넘지 못하는 현대의 기술 조류에 견준다면 5년 가까운 아이팟의 인기에는 무엇인가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이유를 규명하는 작업이 이제 막 궤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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