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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샙 꺾은 최홍만, K-1 톱 스타 반열에 올라…체격·두뇌·맷집 좋으나 타격·킥 기술 떨어져

 
'야수' 밥 샙(미국)을 꺾은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4)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씨름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면서 침울함을 감추지 못했던 아홉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응원 메일만 1만통이 넘게 왔다. 직접 경기장에 찾아왔거나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응원해준 팬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최홍만은 정글과도 같은 프로 격투기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파이터 인생을 펼치기 시작했다.

민속씨름 천하장사였던 최홍만이 입식타격기 K-1 진출을 선언한 때는 2004년 12월이었다. 소속팀 LG씨름단의 해체를 막기 위해 단식 시위까지 벌였던 최홍만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218cm나 되는 장신에다가 태어나서 한 번도 상대를 때리는 운동을 하지 않았던 최홍만에 대한 평가는 냉정했다. 전문가들은 최홍만이 하체가 약하고 씨름과 격투기는 운동 메커니즘 자체가 달라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씨름계를 비롯해 최홍만의 K-1행을 반대했던 쪽은 ‘한국 씨름 천하장사를 장삿속으로 이용하려는 수작’이라고 발끈했다.

샅바 대신 복싱 글러브를 잡은 최홍만은 스텝과 주먹을 뻗는 아주 기본적인 테크닉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팬들을 사로잡는 킥 공격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K-1 진출을 공식 선언한 최홍만에게 먼저 주어진 시간은 겨우 3개월뿐이었다. K-1을 주최하는 FEG는 2005년 3월에 열린 서울대회에서 팬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최홍만의 출전을 발표했다.

“무릎차기는 그냥 저절로 나온다”

‘한·일 전통 씨름의 챔피언 대결.’ 빅카드가 초미의 관심이 된 서울대회는 결과적으로 최홍만을 위한 무대였다. 주최측은 아직 K-1 무대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최홍만을 위해 스모 선수 출신인 격투 초보자를 8강에서 붙여주는 센스(?)를 발휘했다. 4강에서 스모 챔피언 아케보노를 1라운드에 KO시킨 최홍만은 내친 김에 결승에서 월드그랑프리 4강 출신인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태국)을 판정으로 누르고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전국이 순간 들썩거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대회에서 최홍만이 얻은 것은 자신감이었다. 최홍만은 이후 히로시마와 하와이에서 잇달아 KO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한물 간 프로레슬러 톰 하워드나 군살이 출렁거리는 아케보노는 최홍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서울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한 월드그랑프리 개막전. 그곳에서 최홍만은 K-1 진출 후 최대의 벽에 맞닥뜨렸다. 바로 ‘야수’라고 불리는 NFL 미식축구 선수 출신 파이터 밥 샙과 상대하게 된 것. 최홍만도 컸지만 밥 샙도 신장 200cm에 체중이 150kg가 넘었고, 거기에 완벽한 근육질이었다. 밥 샙은 월드그랑프리를 네 차례나 석권한 어네스토 호스트(네덜란드)를 두 번이나 KO시키는 등 격투기 경력에서도 걸음마를 막 뗀 최홍만보다 훨씬 앞섰다.

케이블 TV 역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

밥 샙과의 대진이 확정되자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국내 각 매체와 일반 팬들은 최홍만 대 밥 샙의 빅매치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특히 경기 전부터 두 거인의 엄청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최홍만은 밥 샙을 “야수가 아닌 검은콩이다”라고 조롱했고, 밥 샙은 <재크와 콩나무> 이야기를 빗대며 “거인은 내게 쓰러질 것이다”라고 큰 소리쳤다.
쟁쟁한 선수들이 총출전한 큰 대회였지만 이목은 거의 최홍만과 밥 샙에게 쏠렸다. 엄청난 관심을 확인한 FEG도 당초 세미파이널로 열 계획이었던 최홍만-밥 샙전을 기꺼이 메인 이벤트로 변경하는 발 빠른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최홍만은 밥 샙까지 사냥하면서 명실상부한 정상급 K-1파이터로 우뚝 섰다. 최홍만 자신도 “사실 연장 라운드로 갈 줄 알았다. 코치도 4라운드를 준비하라고 말했다”라고 털어놓았을 정도로 결코 쉬운 경기가 아니었다. 최홍만을 잡기 위해 연마했다는 밥 샙의 로우킥은 경기 초반 최홍만을 괴롭혔고, 무자비하게 던지는 오른손 훅도 간간이 턱에 꽂혔다.
하지만 최홍만은 결코 힘에서 밀리지 않았다. 월등한 체격을 앞세워 상대를 코너로 밀어넣은 뒤 몰아붙이는 것이 밥 샙의 특기지만 최홍만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최홍만은 긴 리치를 이용해 거리를 두고 잽으로 밥 샙을 견제해갔다. 밥 샙에게 접근을 허용했을 때는 적절한 클린치로 위기를 모면하는 영리함도 보였다. 가장 걱정한 부분이었던 맷집도 빛났다. 밥 샙의 강펀치를 수 차례 허용하고도 최홍만은 물러서거나 피하지 않았다. 서울대회 당시 가벼운 펀치에도 당황해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였다.

특히 돋보였던 것은 3라운드에 터진 무릎차기 한방이었다. 최홍만의 거대한 무릎을 제대로 맞은 밥 샙은 얼굴에 피를 흘린 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릎차기는 최홍만의 필살기다. 아케보노와 톰 하워드도 무릎차기에 당했다. 밥 샙도 최홍만의 무릎차기를 철저히 대비했다. 그러나 최홍만이 상대의 뒷목덜미를 당기는 엄청난 힘에 속수무책으로 장하고 말았다. 최홍만은 “무릎차기를 따로 연습한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나온다”라고 말했다. 손으로 당긴 뒤 발로 기술을 거는 씨름이 무릎차기의 기본인 것이다.
하루에 모든 경기를 치르는 씨름은 지구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최홍만은 산악 달리기를 많이 해 지구력을 키웠다. 밥 샙의 지구력을 압도한 것도 승리의 요인이다. 최홍만은 밥 샙과의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해서 경기 시작 전까지 무리하게 운동을 했다고 한다. 보통 선수들은 경기 2~3일 전에 훈련을 마친다.
밥 샙전 승리의 여파는 다른 승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경기 결과에 고무된 국내와 일본의 매체들은 앞다투어 최홍만의 소식을 전했고,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최홍만의 승리를 자축했다. 최홍만의 K-1 경기를 중계한 스포츠 전문 채널 MBC-ESPN은 케이블 위성 역사상 최고의 순간 시청률이었던 15.743%라는 수치에 고무된 모습이었다. 심지어 K-1 주최측조차 최홍만이 이번 대회의 MVP‘라고 밝혔을 정도였다.

최홍만 스스로 ‘이번 경기는 50점짜리’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앞에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밥 샙전에서 최홍만은 종종 가드가 열려 안면에 펀치를 허용하는가 하면 로우킥 한 방에 중심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상대에게 연타를 맞을 때 고개를 완전히 숙인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최홍만은 한 경기 한 경기를 치를 때마다 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본인이 “K-1에서 운동을 하는 것이 재밌다”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그는 새로운 인생에 푹 빠져있다. 거기에 타고난 체격과 운동 능력, 그리고 씨름으로 몸에 밴 강한 근성은 격투기를 시작한지 불과 1년도 안 된 최홍만을 세계 최정상의 무대로 이끌었다.
한국인도 강하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자신의 키만큼 알리고 싶다는 ‘골리앗’ 최홍만. 그가 다음 경기에는 또 어떻게 변신한 모습으로 팬들을 열광시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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