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가족을 통해 본 새로운 가족 제도
문화방송 일일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가 지난 9월30일 막을 내렸다. 지난 7개월 동안 <굳세어라 금순아>(연출 이대영 손형석·극본 이정선)는
줄곧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으며 효녀 노릇을 하다가 종방일에는 급기야 40%를 돌파했다. 방영 초기에는 ‘삼순·금순·문순(최문순 문화방송 사장)’ 후기에는
‘삼순·금순·맹순(KBS 드라마 속 캐릭터)’으로 변형되며 3순 시대 맹주 노릇을 톡톡히 했다.
씩씩한 금순의 캐릭터만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 것은 아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이른바 ‘결손 가정’에서 사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눈물짓는지 세밀하게 그려내 공감대를 넓혔다. 누구나 탐낼 만한 총각 의사 구재희는 자신이 혼외자라는 자괴감 때문에 감히 결혼을 꿈꾸지 못했으며,
금순은 자기를 아껴주는 할머니 손에서 어여쁘게 자랐지만 힘겨울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특히 이 드라마는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연대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모성의 수난사를 그려냈다. 아이를 가진 채 남편과 사별하거나(금순과 금순의 모친), 이혼하거나(하성란),
아니면 미혼모로 사는 여성들(오미자)의 애환을 절절이 보여준 것이다. 금순의 모친은 자식을 버린 엄마라는 자괴감 때문에 평생 죄의식에 갇혀
산다. 혼외자를 낳은 오미자는,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아들 재희를 번듯하게 키워냈지만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살게 한 미안함을 지울 길이
없다.
반면 젊은 엄마들은 과감하게 새로운 질서를 꿈꾼다. 아들을 둔 채 재혼한
맏며느리 하성란은, 아들을 맡아 키우고 싶다고 당당히 말한다. 마찬가지로 금순은 아이를 데리고 재혼하겠다고 말한다. 기성 세대인 금순의 시부모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왜 남의 씨를 데려와 키워야 하며, 우리 집 씨는 남의 집에 넘겨주어야 하는가.
작가는
시치미를 떼고 한 술 더 뜬다. 구재희로 하여금 금순의 아들 노휘성의 성을 바꾸어 친아들로 데리고 살겠다는 말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은
‘씨는 불변’이라는 굳은 관념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평소 인자하고 사리 분별이 돋보였던 시아버지 노소장이 그 얘기를 듣고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이다. “노휘성을 구휘성으로 바꾸겠다니. 내 핏줄을 그 집 핏줄로 바꾸겠다니!”
온갖
갈등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던 드라마는 종반에 이르러 대수습에 나선다. 금순의 시어머니 정심은 성이 바뀔 손자 휘성을 두고 ‘구휘성이든
노휘성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휘성이가 잘 지내는 게 중요하지’라며 애써 마음을 추스른다. 하지만 시부모의 이해 덕에 성란이 우주를 데려오고,
시부모의 양해 아래 금순이가 휘성을 데리고 결혼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현행 호적법으로는 그들 모자가 합법적으로 가족이 될 길이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가족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호적이 사라지는 시대, 새로운
가족 관계가 어떻게 구현될지 대법원 안을 기초로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족 관계를 정리해 보았다. 대법원안에 따르면 새로운 신분
기록은 ‘내가 어느 집안 소속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중심으로 관련 정보를 드러낸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신분등록제도는
1인1적(혼합형) 제도가 유력하다(상자 기사 참조).
또 호적 등본처럼 단 하나의 문서에 신분 정보를 모아놓지도 않는다.
개인마다 하나의 데이터 뱅크에 모든 정보를 집적하되, 실제 개인이 손에 쥐는 문서는 잘게 쪼개진 각종 증명서이다.
가족관계증명서·일반신분증명서·혼인관계증명서·입양관계증명서·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그 예이다.
그
가운데 가족관계증명서는 ‘현재 나의 가족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양식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길까. 민법상 가족 규정과는 관계없이
‘본인과 부모(양부모), 배우자와 자녀’만 기록될 예정이다(형제 포함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결혼한 사람이라도 배우자의 부모는 본인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남성의 경우 장인 장모가 기록되지 않고, 여성의 경우도 시부모가 가족으로 기록되지 않는 것이다.
본인과 부모, 배우자와 자녀의 기록만 오를 뿐
아니라 그들이 각각 어떤 길을 걷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아들이 결혼했다고 해서 며느리가 내 가족 기록에 새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다. 또 딸이
결혼했다고 해서 딸의 기록이 삭제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호적은 며느리가 내 가족으로 들어오고 딸은 제적되어 나감으로써 여성의
출가외인 관념을 공적인 기록에서 확정해 주었다.
‘호적 없는 세상’에서 드라마 속 등장 인물은 어떤 기록부를 손에 쥐게 될까. 가족관계증명서를 중심으로 시뮬레이션해 보았다.
오미자(재희 엄마)-유부남과 혼외자를 낳은 미혼모
가족관계증명서에 오미자의 부모와 아들 재희가 오른다. 아들 재희는 혼외자다. 유부남이었던 재희의
생부는 아들의 존재조차 몰랐다. 옛 호적법에 따르면, 만약 재희의 아버지가 아들의 존재를 알고 그를 친아들로 인지하는 순간 재희는 아버지 호적에 올라버린다.
앞으로 이런 경우라면? 오미자와 재희가 모자지간이라는 것은 불변이다. 오미자와 구재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미자가 재희를 낳은 것은
엄연하므로 오미자의 기록에 재희는 아들로 남는다.
영옥(금순의 엄마)-딸을 둔 채 재혼
영옥의 부모 기록과 현재 배우자 장박, 자녀인 금순과 새로 낳은 딸이 가족관계증명서에
기록된다. 현행대로라면 영옥과 금순은 호적상 아무 관계가 없다. 영옥이 재혼하면서 호적에서 빠져 나갔기 때문. 앞으로는 영옥이 재혼을 했더라도
금순을 낳았다는 것은 불변이므로 영옥의 가족 기록에 금순은 딸로 고스란히 남는다. 사별한 남편의 기록은, 영옥의 현재 가족관계증명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혼인관계증명서에만 드러난다.
장박-아내와 사별 후 재혼
자신의 부모와 배우자 영옥, 첫 결혼에서 얻은 딸과 재혼에서 얻은 딸이 기록에 오른다. 사별한 아내는
혼인관계증명서에만 드러나며 현재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당연히 재혼인 것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성란-아들을 놓고 재혼한 이혼녀
자기 부모와 새 배우자 노시완,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우주가 가족으로
기록된다. 기존 호적법에 따르면 하성란이 이혼했으므로 아들 우주와는 모자 관계를 증명할 길이 없다. 친권과 양육권을 가진 경우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하성란이 어떤 혼인 관계를 유지하든 우주가 아들이라는 기록은 고스란히 남는다. 전 남편의 기록은
혼인관계 서류에만 남는다.
노시완-아들이 딸린 이혼녀와 결혼한 총각
노시완의 부모와 배우자 하성란이 기록에 오른다. 시완이 하성란의 아들 우주를 친양자로
들이지 않는 한, 우주는 노시완의 기록에는 아들로 오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