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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형 업체들, 저가 항공사 급성장·제트유 값 급등으로 ‘파산 직전’
가장 최근에는 미국 항공업계 3위인 델타 항공사와 4위인 노스웨스트가 제트유 상승에 따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이로써 두 항공사의 구제 신청으로 법원의 보호를 받게 된 미국 대형 항공사는 기존의 유나이티드 항공사와 유에스 항공사를 비롯해 모두 4개로 늘어났다.
이들 항공사 외에 아메리칸 항공사, 콘티넨탈 항공사까지를 일컬어 미국에서는 항공업계를 지배하는 ‘빅 식스’로 부른다. ‘빅 식스’ 뿐 아니라 지금까지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낸 미국 항공사는 무려 1백40개나 된다. ‘빅 식스’ 가운데 일찌감치 구조 조정을 끝낸 아메리칸 항공사와 콘티넨탈 항공사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건전한 재무 구조를 갖고 있다.
델타와 노스웨스트 같은 초대형 항공사를 파산 지경으로 내몬 주된 요인은 제트유 급등에 따른 비용 부담이다. 제트유는 지난 2001년 갤런 당 56 센트였지만 지금은 1 달러 92 센트로 무려 2백40%나 껑충 뛰어오른 상태다. 이로 인해 미국 항공사들이 지불한 추가 유가 부담액은 지난해 90억 달러에 달했고, 올해도 1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제트유가가 1 달러 오를 때마다 이들 항공사들은 연평균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트유 가격을 치솟게 한 주범은 역시 허리케인 카트리나다. 걸프 지역 정유 공장들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카트리나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이미, 전년도에 비해 50% 이상 제트유 값이 올라 허덕이던 델타와 노스웨스트는 카트리나 여파로 제트유가 또다시 25% 오르자 마침내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제트유 가격의 앙등이 항공사들을 파산으로 몰고 간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지난 2001년 이래 1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델타의 경우 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의 연봉을 대폭 삭감하고 수만 명의 직원을 줄이는 등 뼈를 깍는 비용 절감 노력을 펼쳐왔다. 어떻게든 파산 보호 신청만큼은 피하기 위해서였다. 델타는 1년 전에도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조종사들의 연봉 삭감안 합의로 위기를 모면한 바 있다. 델타는 이번에 파산보호 신청을 내면서 향후 2년간 추가로 9천명을 감원하고 비행기 80대를 처분해 30억 달러를 추가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노스웨스트 항공사도 파국만은 막아보려고 임금 및 각종 연금 혜택 삭감을 골자로 한 14억 달러의 비용 절감안을 노조측과 협상했지만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지난 2001년 이후 36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노스웨스트는 최근 정비사들과도 1억7천6백만 달러의 임금 삭감안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저가 항공사 탑승료, 대형 회사의 절반
대다수 대형 항공사들을 적자의 외길로 몰고 간 요인은 또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로 대표되는 저가 항공사들의 출현이 그것이다. 대형 항공사들이 하나같이 지난해 적자를 냈지만 사우스 웨스트를 비롯해 제트블루, 알라스카 항공 등 저가 항공사들은 예외 없이 흑자를 냈다. 저가 항공사들의 고객 점유율은 지난 1990년 고작 6%에 불과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 같은 국내 노선의 경우 탑승료가 대형 항공사에 비해 절반 수준이면서도 기내에서 위성 TV까지 볼 수 있는 특급 서비스까지 제공하니 고객이 구름처럼 몰려들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왕복 비행 편의 경우 사우스웨스트와 제트블루가 2백99 달러인데 비해 델타는 무려 5백81 달러나 된다.
델타는 미국 국내 노선을 놓고 사우스웨스트와 중복되는 곳이 70%가 넘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파산 보호 신청을 한 델타와 달리 사우스웨스트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항공사는 올해로 창사 34년을 맞았다. 이처럼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 항공사는 현재 미국 내 60개 도시에 연평균 7천만 명을 실어나를 만큼 쑥쑥 성장하고 있다.
이 항공사는 다른 대형 항공사들이 고가의 제트유를 견디지 못해 휘청거리고 있지만 풍부한 현금을 동원해 제트유 가격이 오르기 훨씬 전에 선매해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대형 항공사들이 오늘과 같은 도산 위기에 몰린 요인을 자만과 변화에 둔감했던 늑장 대응에서 찾고 있다. 대형 항공사들이 과거 너도나도 노선 확장을 통해 고객 잡기에만 신경 썼지 오늘과 같은 환경을 미리 내다보지 못하고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철저히 노조화된 인력,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되는 종업원 연금 혜택, 여기에 자구 하나 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든 근로 조건 등 오늘의 경영 환경에서 보면 악조건을 고루 갖춘 이들 대형 항공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무기’는 고가의 탑승료와 적정 수준의 제트유가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미국 대형 항공사들은 지난 1978년 카터 행정부 시절 항공 노선과 운임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풀리자 국내 주요 거점 도시망을 연결하는 독점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규제가 풀리면서 피플 익스프레스(People Express) 같은 일부 저가 항공사들이 나타나자 대형 항공사들은 값이 더 싼 비행기 표를 내놓아 이 항공사들을 내쫒았다.
대형 항공사들의 독점 체제는 그러나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사우스웨스트 등 일부 저가 항공사들의 본격 도전에 휘청거리더니 마침내 2000년 제트블루의 탄생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고객들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우스웨스트와 제트블루는 독점 체제의 틈새를 주도면밀하게 파고 들었다. 대도시 공항을 중심으로 연결된 대형 항공사들의 비행 노선을 가급적 피하면서도 웬만한 중소 도시의 공항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것이다.
2001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면서 대형 항공사들은 본격적인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저가 항공사들은 승승장구했다. 대형 항공사들은 1990년대 호황 시절에는 한때 기업의 중역들에게 예약 없이 6백~1천5백 달러까지 웃돈만 지불하면 언제든 살 수 있는 비행기 표로 상당한 재미를 봤다. 심지어 어떤 항공사는 수익의 70%를 이런 표에 의존했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자 웃돈 비행기 표를 찾는 기업 중역들이 사라졌다. 이들 항공사는 과거 같으면 항공 요금을 인상하는 방법으로 적자를 만회했지만, 저가 항공사와 경쟁하는 체제에서는 이마저 불가능하다. 설상가상으로 제트유 가격이 ‘제트 속도’로 치솟자 대형 항공사들은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어진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제트유 악재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앞으로 6개월 안에 빅 식스가 지배해온 미국 항공업계에 어떤 식으로든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