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 <모래도시를 찾아서>/시인 고고학도의 중동 문명 답사기
시인 허수경은 ‘문명의 기억’을 채취하는 연금술사이다. 10여 년째 독일에 체류하면서 근동(近東)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 시인 허수경의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 펴냄)는 문명의 기억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상상력으로 인간 역사의 무늬를 깊이 응시하려는 ‘지혜’를 머금고 있다. 고고학이라는 학문 특유의 사색과 시인의 빛나는 감성이 어우러져 한 권의 멋진 산문집을 빚어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모두 열일곱 장으로 구성된 이 산문집은 유물이 갖는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의미를 묻는 텍스트이다. 시인은 고대 문명 발상지인 오리엔트의 옛 도시 바빌론을 중심으로 메소포타미아·아라비아·중동 지역에 이르기까지 고고학도로서의 발굴 체험을 담담히 풀어냈다. 이 책은, 시인의 표현처럼, 유물 발굴 현장에서 느끼는 다양하고 복잡한 단상들을 통해 일종의 ‘기억의 언덕’(14쪽)을 파내려가는 글쓰기 형식을 취한다.수메르어와 악카드어 판본으로 구성된 6천년 전의 옛 점토서판에 적힌 내용이 ‘경제 문서’였다는 점,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살인>이라는 추리 소설을 쓴 애거서 크리스티의 상상력이 고고학자였던 남편의 직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고고학적 사실이란 결국 ‘발굴의 우연’이라는 작은 괄호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 같은 사실을 이 책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이러한 소소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읽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고고학이라는 것은 시인 나름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하나의 창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인간 역사라는 것, 우리네 삶의 꼴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에 이르도록 만드는 힘에 있다.
산문 <바빌론>의 제사(題辭)로 사용된 B. 브레이트의 표현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그리고, 수없이 파괴당했던 바빌론,/누가 그곳을 그렇게 수없이 다시 건설하는가.’ 이라크전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문화적 반달리즘(vandalism)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시인은 결국 전쟁이란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얼굴’로 만드는 행태라고 비판한다. 정치적으로 얽혀본 적이 없는 우리와 그곳 사람들이 그렇게 ‘타인의 얼굴’로 얽힘의 역사를 시작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왜 시인이 죽은 자의 영면을 위해 무덤 발굴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죽은 자는 작은 자로 하여금 장사 지내도록 해야 한다’는 격언은 이 경우에도 통용되는 셈이다.오리엔트의 옛 도시에서 발굴에 참여하다
이러한 발굴 뒷이야기 외에도, ‘모래도시’에서 속수무책으로 대면해야 하는 지독한 향수병을 적은 대목도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시인의
주정(主情) 토로는 너스레 따위의 찬란한 잔재주와는 아예 담을 쌓았다. 이집트 테베의 투탕카멘이라는 소년 파라오의 묘 발굴 현장에서 고향땅의
방아잎 냄새를 그리워하는가 하면, 옛 점토판 문서에 찍힌 고대인의 지문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흔적에 공감한다는 서술은 자못 감동적이다. 그리고
발굴 현장에서 병치레를 해야 했던 실존적 상황에서 ‘기역(ㄱ) 선생’과 ‘미음’ 한 모금을 그리워하고, 시인 백석의 시편들에서 우리 모어의
‘말의 한 우주’(197쪽)를 엿보는 장면들은 시인의 사유가 무척이나 깊어졌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고고학과 고현학(古現學)을 동시에
넘나들면서 문명의 미래를 오래도록 사유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시인 허수경의 사유는 내공이 느껴질 만큼 한없이 깊어졌으며, 앞으로 시 쓰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즐거운 예감이 결코 주제넘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문명의 미래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타인 혹은 타자 되기 체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영원히 지속되는 도시는 없으며, 우리네 삶의 터전 역시 언젠가는 고고학적으로 발굴할 수 있는 ‘잠정적인 후보’(124쪽)에 불과할 것이라는 고고학도 시인 허수경의 전언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소중한 진실을 함축한 가치 지향일 것이다. 이 가을에, 자신을 낮추고 상대화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이 책의 행간에서 누려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