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적통”…오세훈-김동연, 한동훈-이재명 위협할까

뿌리 약한 한동훈·사법 리스크 이재명의 빈틈 노리는 두 與野 잠룡 중앙정치 접점 넓히며 ‘정통성’ 강조…‘약한 팬덤’ ‘반사이익’ 과제

2024-09-06     구민주 기자

정치권을 떠도는 ‘10월 위기설’이 단단했던 ‘이재명-한동훈 양강 구도’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중 나올 사법 리스크 관련 첫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유죄가 선고될 경우 정치적 타격과 당내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앞엔 10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채 상병 사건 수사 결과 발표와 당대표로서 처음 치르는 재보궐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채 상병 특검법 추진과 선거 승리에 대한 압박 속에 리더십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두 유력 대권주자가 잠재적 위기로 흔들리는 틈을 타 활동반경을 부쩍 넓히고 있는 또 다른 잠룡들이 있다. 여권의 오세훈 서울시장, 야권의 김동연 경기지사가 대표적이다. 광역단체장으로서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이들의 말과 발이 최근 자주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이들의 잰걸음에 대권시계도 덩달아 빨라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사 ⓒ연합뉴스

‘윤석열vs홍준표’보다 치열할 ‘한동훈vs오세훈’?

“국민의힘 차기 대권 경쟁 구도는 ‘한동훈 대 오세훈’으로 짜일 가능성이 크다. 앞선 ‘윤석열 대 홍준표’ 대결만큼이나 꽤 팽팽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원했던 한 여권 관계자의 관측이다. 압도적 선두주자와 미미한 추격자라는 현재의 경쟁 구도가 대선에 임박해선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같은 관측엔 크게 두 가지 근거가 언급된다. 먼저 한 대표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과 완전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권의 한 의원은 “평소에 정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대다수 국민은 한 대표를 여전히 ‘윤석열의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지금과 같은 지지세로 임기를 마무리한다면 과연 국민이 윤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검찰 출신 대통령을 또 한번 뽑으려 할까”라고 반문했다. 오 시장에 대해선 “윤 대통령과 정치적 동선이 겹치지 않았고 여러모로 거리감이 있다.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내 뿌리가 약하다는 점도 한 대표로선 한계로 꼽힌다. 이 점은 반대로 경쟁자 오 시장에겐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오 시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보수의 ‘본류’이자 ‘적통’이라고 스스로 강조해 왔다. 대선을 앞두고 전통 보수세력이 한 대표의 대항마로서 보수에 뿌리가 깊은 오 시장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 시장은 최근 이른바 ‘식사 정치’를 통해 여당 인사들과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다. 총선 이후엔 수도권 등 권역별 당선자와 낙선자들을 두루 초청해 식사를 했고, 개혁신당과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의 만남에도 적극 임하며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오 시장 자신도 과거와 달리 “대선 출마 가능성이 50대 50에서 51%로 진전됐다”며 출마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 대표와 대립하는 메시지를 서슴지 않고 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지구당 부활 반대,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한 대표의 정책 방향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동시에 이재명 대표의 ‘기본소득’과 자주 비교되는 ‘안심소득’을 비롯해 대선까지 끌고 갈 자신의 ‘시그니처’ 정책들을 빠르게 쌓아가고 있다. 일각에선 당정·당내 관계를 의식해야 하는 한 대표보다 57조원 예산을 바탕으로 ‘오세훈표 민생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오 시장이 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이 더 넓다는 평가도 나온다.

 

친노·친문 손잡고 ‘노무현의 길’ 노리는 김동연

야권에선 김동연 경기지사가 ‘이재명의 민주당’ 근거리에서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에 맞설 야권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이른바 ‘3김’(김경수·김동연·김부겸) 중 가장 앞장서 대권 가도를 닦고 있다. 한편으론 윤석열 정부를 향한 공세를 늘리고 다른 한편으론 ‘비주류’가 된 친노(親노무현)·친문(親문재인)을 끌어모으는 ‘투트랙’ 행보가 눈에 띈다.

김 지사의 최근 한 달 동선만 살펴봐도 그의 이러한 전략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그는 지역 응급실을 방문하고 이종찬 광복회장을 만나며 정부와 직접 각을 세웠다. “의료 붕괴는 정권 붕괴” “제2의 경술국치” 등 정부를 저격하는 메시지 빈도도 부쩍 높아졌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서사를 만들기 위한 시도에도 나서고 있다. 8월21일 김 지사는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포럼’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해당 포럼은 경기도가 후원해 열린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김 지사는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실 보좌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던 탁상시계를 현재 집무실 책상 위에 두고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8월31일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재단 초청 특별대담을 열었다. 김 지사는 이날 권양숙 여사와 만찬을 가졌고 노 전 대통령과 자신 모두 ‘상고 출신’인 데다 삶의 여정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즉각 “정치보복” “노무현 기시감” 등 규탄 메시지를 연이어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상징적인 행보는 친노·친문 핵심 전해철 전 의원을 도정자문위원장으로 위촉한 일이다. 전 전 의원은 직을 수락한 후 “정치적 의미를 전혀 부정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며 김 지사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외에도 ‘김동연의 경기도는 친문·친노 빅텐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금실 노무현 정부 법무부 장관(경기도 기후대사), 강민석 문재인 청와대 대변인(경기도청 대변인) 등 도정 요직 곳곳에 친노·친문 인사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김 지사의 행보를 두고 한 야권 인사는 “그동안 이재명 대표와 친명(親이재명) 지도부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소홀하다는 지적이 많지 않았나. 특히 지난 총선 당시 ‘비명횡사’ 공천으로 친문과는 감정도 그리 좋지 않다”며 “그런 가운데 김 지사가 ‘민주당의 적통’이 되겠다며 적극 나서고 있으니 점점 더 세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야권에선 김 지사가 이 대표 못지않게 굴곡진 ‘흙수저 스토리’를 갖고 있는 데다, 이 대표가 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도 없다는 점이 대권 레이스에서 큰 경쟁력으로 작용할 거란 평가도 나온다.

오세훈·김동연 두 잠룡은 경쟁자인 한동훈·이재명 대표보다 중도 확장성 면에서도 유리한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비호감도가 낮고 합리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험난한 정치 여정을 함께 돌파할 콘크리트 지지층, 즉 강력한 ‘팬덤’이 적다. 중도층에 소구력 있는 합리성을 유지하면서 두터운 팬덤을 만드는 일은 대선까지 남은 기간에 이들의 최대 과제로 꼽힌다.

오 시장의 경우 ‘개혁보수’ 이미지를 내건 개혁신당과 겹친다는 문제도 있다. 이준석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오 시장의 캐릭터와 입지는 더욱 모호해질 수 있다. 김 지사 역시 ‘3김’으로 묶인 김경수·김부겸 두 잠룡에 더해 당 밖의 이낙연 전 총리·조국 대표까지 야권 내 ‘이재명 대항마’를 자처할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재명·한동훈 두 대표가 각각의 ‘10월 위기’를 돌파할 경우 ‘2등 주자’인 이들의 존재감은 또다시 한동안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 여전히 여야 선두주자들의 위기가 곧 기회인 ‘반사이익’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차차 돌파해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