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탄핵 정국 속 확산되는 ‘헌재 10월 마비설’
10월 재판관 9명 중 국회 몫 3명 교체 예정…여야, 극한 정쟁 예고 ‘이재명 수사’ 검사 등 4인 탄핵안,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
탄핵 정국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탄핵안을 심판할 헌법재판소 구성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벌어질 전망이다. 국회 몫으로 선출된 헌재 재판관 3명이 오는 10월 교체되는데, 다수당인 민주당이 후임 인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 몫 선출과 관련해선 명확한 법적 규정도 없는 만큼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탄핵 드라이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등 여러 변수 속에서 정치적 셈법이 다른 여야가 샅바싸움을 할 것이란 시각이 짙다. 이 때문에 헌재소장을 포함한 헌재 재판관 3명의 임명 지연 사태를 우려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헌재소장은 국회 동의까지 필요로 한다.
이런 배경으론 결국 탄핵안과 ‘이재명 지키기’가 지목된다. 우선 헌재 구성이 늦어지면 심판대에 이미 오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의 직무 정지 기간이 길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회는 이재명 대표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에 대한 탄핵안을 현재 논의 중인데, ‘검사 탄핵’이 헌재로 넘어가면 이들의 직무 또한 정지된다. 수사기관인 검찰을 향한 압박용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탄핵심판 정족수(9명 가운데 6명 이상 찬성)에 결정적 영향을 행사할 후임 헌재 재판관 선출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정치적 사안을 다루는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에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권에서 불을 지피는 ‘10월 헌재 마비설’에 앞서 그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9월 국회 상황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국회, 10월 중 헌법재판관 3명 교체해야
법조계와 정치권이 주목하는 헌법재판소의 시계추는 10월로 맞춰져 있다. 올 하반기 교체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4명 가운데 3명의 임기 만료 시기가 이때다. 9월 퇴임을 앞둔 이은애 재판관의 후임자는 이미 내정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명한 김복형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10월 퇴임하는 헌재 재판관만 3명(이종석·이영진·김기영)인데, 이들은 모두 국회 선출 인사라는 사실이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선출 몫이다. 이영진(바른미래당)·김기영(민주당) 헌재 재판관 역시 원내교섭단체 정당(의석수 20석 이상)이 지목한 인사다. 이들의 빈자리는 22대 국회가 선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눈여겨볼 지점은 국회 상황이다. 현행법상 국회 몫의 헌재 재판관 3명을 선출하는 구체적 절차는 없다. 헌재 재판관 9명은 대통령 임명(3명), 대법원장 지명(3명), 국회 선출(3명)로 구성되는 등의 내용이 헌법재판소법에 담겼다. 헌재 재판관은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야 한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 이런 배경 탓에 여야 합의에 따라 헌재 재판관을 나눠 선출한 것이 관례였다. 원내교섭단체 정당이 2곳인 양당제에서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 등 3명이 구성됐다는 것이다. 양당제가 유지된 2000년대 이후 원내 제3당이 헌재 재판관을 선출한 전례는 2018년(이영진) 바른미래당의 전례 한 번이다. 8월21일 현재 민주당(170석)·국민의힘(108석) 외에 20석 이상을 확보한 정당은 없다.
이는 민주당의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민주당은 당장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목전에 뒀다.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혐의와 관련한 1심 재판이 올 하반기 예상되기 때문이다. 위증교사 사건에선 특히 사건 당사자가 대부분 사실관계를 시인한 상황이다. “(혐의 사실이)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 판단(2023년 9월)도 있다(시사저널 7월21일자 “[단독] 검찰 ‘탄핵 검사들 법사위 불출석’ 결론…민주당은 ‘검찰 힘빼기’ 속도전” 기사 참조).
그래서인지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 이후 탄핵소추안을 7건(제안일자 기준 6월27일~8월1일) 발의했다. 이재명 대표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과 방송통신위원장들이 대상이다. 민주당은 지난 7월 △검사의 직접 수사 범위가 아닌 명예훼손죄 수사(강백신) △‘국정농단 사건’ 관련 장시호씨에게 허위 증언 교사(김영철)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할 목적의 위증 교사(엄희준) △이화영·김성태 등 쌍방울그룹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 관계자 관련 술자리 마련(박상용) 등의 의혹을 이유로 검사 4명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강백신 검사는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 사건 수사 지휘를, 박상용 검사는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등 이들의 공통점이 이 대표와 연관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판이 커졌다.
이들에 대한 탄핵안은 국회 본회의 전 단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은 오는 9월 이와 관련한 탄핵청문회 추진을 논의 중이다. 김영철 검사에 대한 청문회는 8월14일 열렸다. 관련 의혹을 제보한 마약사범 정다은씨를 제외한 이원석 검찰총장과 김 검사 등 핵심 인물들은 불출석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그의 임명 이틀 만인 8월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헌재 심판대에 오른 상황이다. 헌재는 9월부터 이와 관련한 심리를 본격 시작할 예정이다. 21대 국회에서 가결된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소추안도 헌재 심판대에 오른 상황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직무정지도 장기화할 듯
이런 배경 탓에 헌법재판소 구성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법조계 인사가 적지 않다. 민주당의 탄핵 드라이브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여야가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4월 임기 만료인 문형배·이미선 재판관(문재인 전 대통령 임명)의 후임자를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을 포함해 현 윤석열 대통령-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임명됐거나 될 예정인 헌재 재판관은 4명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임명한 재판관(2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국회 몫 3명의 성향에 따라 심판 결과에 미칠 영향이 있다는 이야기다. 현행법에 따르면 헌재 재판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탄핵·위헌법률·정당해산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야당으로선 2명 몫을 가져와야 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10월 헌재 마비설’도 심심찮게 나온다. 탄핵 등의 결정에 앞서 헌재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야 심리도 열 수 있다.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최소 7명이 채워져야 헌재의 업무가 이어진다는 의미다. 9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은애 재판관의 후임뿐 아니라 10월 재판관 교체에 차질이 빚어지면 심판대에 오른 사건도 들여다볼 수 없다. ‘평의조차 열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 헌재 구성이 늦어지면 이진숙 방통위원장 등의 탄핵 심판이 사실상 마비된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을 비판하며 이 위원장을 탄핵한 민주당의 이해 관계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즉시 대상자의 직무는 정지된다. “헌재 구성이 늦어지는 만큼 이 위원장 등의 직무는 정지되고, 법적 요건이 되지 않는데도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민주당의 의도가 이것”이라는 법조계 관계자들의 지적도 이 때문이다.
법조계, 검사 4인 탄핵 인용 가능성 낮게 봐
실제로 이런 예견은 현실화하고 있다. 탄핵 심판 등의 심리는 빨라도 2~3개월은 걸린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헌재가 오는 9월 이 위원장의 탄핵 심판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이때 시작해도 연말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10월 후속 인사마저 지연되면 이 위원장 등의 사건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그 기간만큼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
헌법재판소의 지형 변화를 주목하는 시각은 특히 짙다. 헌재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비롯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검사 4인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이들도 심판할 가능성이 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들의 탄핵 인용 결정 가능성을 극히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탄핵소추안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수사하는 검찰을 향한 ‘압박용’으로 해석된다는 사실이다. 이를 넘어 ‘윗선’을 겨냥한 민주당의 탄핵 강공이 있을 때는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이런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헌재의 사법 기능을 넘어선 정치적 판단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헌재가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사안의 경우 정치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법조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그래서 9월 국회 상황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선 국회 몫의 헌재 재판관 3인이 쟁점이 되고 있다. 태풍의 눈은 3명 중 여야 합의로 선출될 1명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2018년 바른미래당의 전례를 근거로 현재 제3당인 조국혁신당이 추천 몫을 가져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국회 몫 3명 가운데 야권 성향이 2명이 된다. 탄핵 심판 정족수에서 여권 추천 몫(5명)에 맞서 거부권(4명)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조국혁신당은 원내교섭단체가 아니어서 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헌재 재판관 출신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통과시킨 탄핵소추안은 법률적 요건 등을 따졌을 때 인용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며 “그런데도 탄핵안을 헌재로 넘기고 헌재 구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건 해당 공직자의 업무를 정지시키고 수사기관인 검찰을 압박하는 의미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탄핵이 과거 한 번 성공한 이후 요건도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탄핵을 남발한다”고도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대통령·대법원장 몫과 달리 국회가 추천하는 재판관은 국회에서 의결돼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다”며 “현재 심판 대상인 탄핵안뿐 아니라 또 다른 탄핵안을 염두에 두고 국회 몫의 재판관을 선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법조계에선 헌재 재판관을 보수 성향 2인(이종석·정형식), 중도 3인(이영진·김형두·정정미), 진보 4인(문형배·이미선·이은애·김기영)으로 보고 있다. 이 가운데 보수 1인(이종석), 중도 1인(이영진), 진보 2인(이은애·김기영)이 올 하반기 교체된다. 이종석 헌재소장의 연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이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다음 달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교사 사건의 결심공판을 진행한다. 이 밖에 대장동·백현동·성남FC, 쌍방울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 등 두 건의 재판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