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청약’ 광풍이 불러온 나비효과

로또 청약에 ‘집값 안정’ 본래 목적 잃은 분양 제도 “분양가 상한제 손봐야” 주장에도 논의는 ‘난항’

2024-08-12     조문희 기자

“고객님 앞에 2,491,672명이 대기 중입니다.” 7월29일 수백만 명의 사람이 유사한 장면을 마주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홈페이지에 뜬 접속 지연 안내문이다. 2022년 2월 청약홈 개설 이래 사이트가 폭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태의 중심엔 ‘분양가 상한제’와 ‘무순위 청약’이 있었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 단지는 시세 대비 수억원가량 저렴하게 분양되는 데다, 무순위 청약에는 별다른 자격 제한이 없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이날 청약시장이 ‘대국민 투기장’이었다는 비난을 받게 된 배경이다.

문제는 이 같은 광풍이 한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터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청약 단지에 수요가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분양가 상한제를 포함해 청약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로또 청약’ 사태를 촉발한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로또 청약’ 일정이 맞물리면서 7월29일 청약홈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시사저널 임준선

1. 누구나 가능하지만 아무나 안 되는 ‘줍줍’

초유의 청약홈 마비 사태가 일어난 배경엔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이 있다. 이 단지 전용면적 84㎡ 1가구 무순위 청약(미계약 물량)에 294만여 명이 몰렸다. 경쟁률만 294만 대 1이다. 2017년 같은 단지 최초 분양 당시 1순위 청약 경쟁률이 77.54대 1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이다. 분양가가 7년 전 공급 가격인 4억8200만원으로, 시세 대비 10억원 이상 저렴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소위 ‘줍줍’이라고도 불리는 무순위 청약은 떴다 하면 큰 관심을 받는다. 특히 무순위 청약 중에서도 미계약 물량은 만 19세 이상이면 주택 소유나 청약통장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넣을 수 있다. 같은 무순위 청약이라도 ‘계약 취소 주택 재공급’ 유형은 기존 공고와 동일한 자격 조건을 유지한다. 동탄역 롯데캐슬도 같은 날 계약 취소분 4가구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는데, 총 5만3888명이 청약하는 데 그쳤다.

무순위 청약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무순위 청약은 2019년 이전까지 분양업체에서 임의 공급 방식으로 관리했고, 현장에서 접수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추첨 방식에 불공정 시비가 붙으면서 청약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 접수하는 식으로 일원화됐다. 기회의 문을 넓힌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문턱을 없앤 탓에 투기성 수요까지 끌어모으게 됐다.

그렇다고 무순위 청약을 아예 없앨 순 없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정한 사유로 잔여 세대가 발생해 무순위 청약이 진행되는 것인데, 건설사 입장에선 이를 털지 않으면 ‘미분양’ 꼬리표를 달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임의 공급 방식으로 회귀하자니 ‘깜깜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무순위 청약에도 소득 기준을 두는 등 최소한의 자격 기준을 보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2. ‘독이 든 성배’ 된 분양가 상한제

무순위 청약뿐만 아니라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은 대부분 경쟁률이 치솟는다.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가를 ‘택지비+건축비’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로, 1977년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집값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국이 공익을 목적으로 시장가격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후 몇 차례 폐지와 재도입을 오가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간 택지로 확대 적용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 등 규제지역 내 민간 택지와 공공택지개발지구에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다.

업계에선 분양가 상한제를 통한 집값 안정 효과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본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지역에서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분양가 상한제로 14억원대에 분양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 59㎡의 최근 실거래가는 33억원에 달한다. 오히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은 ‘상급지’라는 인식으로 이어져, 쏠림 현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받는다.

다만 분양가 상한제를 완전히 폐지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주택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어 쉽게 해제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분양가 상한의 범위를 10% 이내로 제한하거나, 일종의 경매 방식인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개발이익을 환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다만 이는 소수 전문가의 의견이며,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진 않다.

국토부는 향후 분양가 상한제 관리 체계를 개선할 방법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여부에 따른 분양가를 비교해 데이터를 확보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분양가 구성 항목인 기본형 건축비와 택지비, 건축·택지 가산비의 적정성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

3. ‘돈 넣고 돈 먹기’ 된 분양시장

분양가가 치솟는데 청약 기준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기회의 불균등을 유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서울 민간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4190만4000원으로 1년 새 31% 뛰었다. 특히 최근 ‘로또 청약’으로 주목받은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와 강남구 ‘래미안 레벤투스’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았는데도 분양가가 전용 84㎡ 기준 각각 23억3000만원, 22억7680만원이었다. 그런데도 시세 대비 20억원가량 저렴해 각각 13만 명, 4만 명이 몰렸다.

이들 단지는 분양가 자체가 높고, 투기과열지구라 대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실거주 의무가 3년 유예됐지만,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는 것도 제한적이다. 결국 막대한 현금 동원력이 있는 사람만 분양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특별공급이라면 소득 제한도 받는다. 소득은 낮지만 현금이 많은 무주택자이거나, 가족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신혼부부의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청약 제도 개선 논의가 완료되기 전까진 분양시장에 대한 관심이 고조될 전망이다. 수도권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시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의 청약 경쟁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하반기에도 상당한 물량이 분양을 앞두고 있어, 주변 단지 대비 분양가 경쟁력을 얼마나 갖췄느냐가 흥행의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