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 외치다 반값 이하에 팔린 ‘티메프’의 흑역사 

과도한 출혈 마케팅으로 티몬·위메프 정산·환불 지연 사태 초래

2024-07-26     공성윤 기자

“100명 뭉치면 레스토랑 식사권이 반값”.

2010년대 초반 SNS에서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광고 문구였다. SNS와 쇼핑 서비스를 결합해 공동구매를 유도하는 이른바 ‘소셜커머스’ 마케팅이다. 소셜커머스 전략은 당시 미국에서 급성장한 이커머스 기업 그루폰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루폰을 따라 하는 소셜커머스 업체가 국내에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수는 2010년에만 100개가 넘었다. 지금 정산·환불 지연 사태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티몬과 위메프도 그중 하나였다. 이제는 국내 이커머스 업계 1위에 올라선 쿠팡도 원래 공연·전시 티켓 구매에 특화된 소셜커머스 업체로 출발했다.

싱가포르 기반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위메프와  티몬 정산 지연 사태가 확산되자 7월25일 서울 강남구 티몬 본사 앞에서 피해자들이 직원 면담을 요구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업종 전환 성공에도 ‘반값 마케팅’ 포기 안 해

하지만 2010년대 중반 들어 인스타그램 등 SNS가 직접 공동구매를 추진하자 소셜커머스 업체들도 업종 전환을 꾀했다. 쿠팡이 먼저 2014년 로켓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며 개인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오픈마켓으로 탈바꿈했다. 티몬과 위메프도 각각 2016년, 2017년에 오픈마켓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래도 두 회사가 포기하지 않은 게 있다. ‘반값 마케팅’이다.

반값 마케팅은 유통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재고자산을 털어내고 유동성 확보가 필요할 때 간헐적으로 반값 마케팅을 선보인다. 그런데 티몬과 위메프는 거의 주기적으로 특가 행사를 추진했다. 티몬은 2018년 12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티몬데이’를 통해 최대 90%라는 파격적인 할인율을 내세웠다. 위메프의 경우 2019년 1월 결제금액의 2~4%를 한도 없이 돌려받는 멤버십 서비스 ‘특가클럽’을 출시했다. 사실상 2~4%를 상시 할인해 준다는 뜻이다. 게다가 특가클럽 이용료도 한 달 990원으로 이커머스 멤버십을 통틀어 제일 저렴했다. 이에 더해 두 회사는 수시로 할인쿠폰을 뿌렸다. 매년 명절과 연말에 기획전을 열어 할인 경쟁에 나서는 건 기본이었다.

반값 마케팅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거뒀다. 티몬은 티몬데이 실시 직후 하루 평균 매출이 2배 이상 올랐다. 위메프는 2019년 1분기 1조5900억원의 거래액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하지만 길게 보면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티몬의 매출액은 2018년 4972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9년 1722억원 △2020년 1512억원 △2021년 1291억원 △2022년 1205억원 등으로 계속 내려왔다. 그사이 영업이익은 줄곧 적자였다. 2022년 영업손실은 1527억원으로 5년 적자 폭이 가장 컸다.

작년과 올해는 티몬의 실적 확인이 불가능하다.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몬은 감사보고서 제출의 선제 조건인 정기 주주총회를 아예 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나쁜 실적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주총을 피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상법상 주총은 매년 1회 이상 열어야 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를 부과받는다.

위메프는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러나 악화일로를 걷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만 해도 거래액 증가와 함께 매출액 4653억원을 달성해 먼저 하락세로 전환한 티몬(2019년 매출액 1722억원)과 격차를 벌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결국 내리막길을 탔다. 매출액은 △2020년 3853억원 △2021년 2345억원 △2022년 1707억원 △2023년 1268억원 등으로 계속 떨어졌다. 해당 기간 동안 영업이익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티몬과 위메프 모두 자금난에 허덕일 때 큐텐이 등장했다. 큐텐은 G마켓 창업자 구영배 대표가 2010년 싱가포르에 세운 이커머스 업체다. 앞서 구 대표는 2009년 G마켓을 글로벌 이커머스 이베이에 매각했는데, 당시 ‘10년 경업(경쟁업종) 금지’ 약정서에 서명했다. 공교롭게도 경업금지 약정이 풀리던 2019년부터 티몬과 위메프는 출혈 마케팅에 따른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큐텐은 2022년 9월 티몬을 인수한 데 이어 2023년 4월에는 위메프도 인수했다. 정확한 인수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각 2000억원대로 추산된다. 티몬은 2015년 지분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 때 기업 가치가 최대 2조원에 이른다는 얘기가 있었다. 위메프의 기업 가치는 2019년 투자유치 때 무려 3조원대로 평가됐다. 이에 비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한 셈이다. 인수 당시 둘 다 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비상장사라 가치 산정이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인수 후에도 할인 또 할인…‘상테크’까지 출현

티몬과 위메프는 큐텐의 품에 들어간 후에도 출혈 마케팅을 멈추지 않았다. 티몬은 2022년 말부터 기획한 할인행사 ‘몬스터절’ 규모를 점차 키우기 시작했다. 단일 브랜드를 집중 할인하는 ‘올인데이’도 선보였다. 위메프는 ‘메가세일’이라는 글로벌 쇼핑축제까지 열었다.

결정적인 장면은 두 회사가 작년 중순부터 해피머니, 컬쳐랜드 등 온라인 상품권을 할인해 팔기 시작한 것이다. 할인율은 7~10%였다. 이전에도 ‘핫딜’ 형태로 가끔 판매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판매 주기가 짧아졌다. 보통 상품권 할인율이 2~3%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할인 폭이다. 이 때문에 상품권을 대량 구매해 웃돈을 주고 되팔거나 신용카드 실적을 채우는 ‘상테크(상품권+재테크)’ 열풍이 불었다.

상품권 할인 판매의 이면에는 티몬과 위메프의 유동성 문제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됐다. 상품권에 대한 높은 수요 덕분에 판매회사는 당장 일정액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상품권을 고객에게 지급하는 시기가 판매 시점과 한 달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회사는 그동안 자금을 돌릴 수 있다. 사실상 상품권으로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결국 이번 정산·환불 지연 사태로 상품권 판매의 목적이 드러났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더군다나 이번 사태 이후 네이버페이, SSG페이, 페이코 등 결제 서비스사가 티몬에서 판매한 상품권의 발행사와 제휴를 끊었다. 일각에선 2021년 1000억원 상당의 환불액 미지급 사고를 초래한 ‘머지포인트 사태’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해당 사태를 일으킨 머지플러스 권남희 대표와 동생 권보군 최고운영책임자(CSO)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작년 10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4년·8년형을 확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