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 한동훈

2024-07-26     전영기 편집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의 변심에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외신을 읽으면서 웃음이 났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권력자들의 착각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이든으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 민주당 대선후보를 교체할 수밖에…’라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뜻이 전해지기 전까지 바이든은 자기가 트럼프를 이기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을 본인만 모르다가 오바마도 그렇다는 말을 듣자 괜한 ‘배신 타령’을 하면서 물러났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이라는 위치의 무게감이 특별하긴 해도 오바마는 그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를 던졌을 뿐이다. 바이든의 문제는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어두웠던 아둔함과 고집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가 23일 당선 직후 당기를 흔들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윤 대통령, 한동훈에 배신감 있다면 털어버리는 게 상책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당 신임 대표에 오른 한동훈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혹시 있다면 한시바삐 털어버리는 게 상책이다. 대통령에게 영향력이 큰 김건희 여사가 옆에서 조언하면 좋을 것이다. 한동훈 대표는 총선 전이나 후, 또 국민의힘 당권 경쟁에서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를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와 검찰 수사 방식에 대해 각각 “몰카 공작에 걸려 들었다.…그러나 전후 과정에 아쉬운 점이 있었고, 국민이 걱정하실 만한 부분들이 있다” “국민의 눈높이를 더 고려했어야 했다”라거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과 관련한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숫자에 매몰될 문제가 아니다” 같은 말들이 그렇다. 이런 발언을 한동훈의 성격이 별나기 때문이라거나 대통령 부부를 정치적으로 이겨먹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곤란하다.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한동훈이 약간 용기를 내어 얘기했을 뿐이다. 그의 언급에 대해 ‘아니다’ ‘틀렸다’고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윤 대통령만 바이든처럼 모양이 빠진다.

실제로 국민의힘 전당대회 막판에 윤 대통령에게 묻지마 충성을 바쳤던 측근들이 “당심은 민심과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싱거운 소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 소리에 기대를 걸었다면 대통령도 뻘쭘해졌을 것이다. 당심(당원투표 62.69%)과 민심(국민여론조사 63.46%)은 일치해서 한동훈을 지지했다. 한동훈의 민심이 당심임이 증명됐다. 한국 정치에서 당심이 최종적으로 민심에 수렴하는 현상은 철칙이라 해도 좋을 만큼 분명해졌다. 당심은 민심을 이길 수 없다.

 

공사 구분 엄격해 보이는 한동훈식 정치로 세태 기울어

이제 윤 대통령이 주의할 것은 한동훈 대표를 옛날 부하처럼 다루려 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혹시 한 대표를 ‘의리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후배’로 여긴다면 그건 마음속에만 감춰둘 일이다. 한동훈의 국민의힘은 더 이상 윤 대통령이 쥐고 흔들었던 얼마 전까지의 집권당이 아니다. 한 대표 역시 의리 관념 따위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1970년대생의 세대적 특징을 고스란히 지녔다. 세태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윤석열 정치가 아내 앞에서 대놓고 달라지는 부조리를 보면서 공사 구분이 엄격해 보이는 한동훈식 정치 쪽으로 기울었다. 윤 대통령이 집권 진영과 나라의 흥망을 가를 당정 관계를 좀 더 합의적이고 수평적으로 가져가야 할 이유는 이 밖에도 차고 넘친다. 만사를 혼자 쥐고 흔들려는 대통령의 군림형 스타일은 몸을 움직일수록 더 깊숙이 빠져드는 수렁과 같다.

다만 한동훈도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대통령 권력은 어떤 경우든 맞서기보다 설득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대권인데 그 의미를 알아야 책임 있는 성숙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선거가 전쟁이라면 정치는 일상이다. 전쟁이 끝나면 장수는 말 위에서 내려온다고 한다. 대통령과의 정치를 전당대회 선거 치르듯 한다면 그것 또한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전영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