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주가조작범 입에서 나온 “VIP”…‘임성근 구명 의혹’ 파문
“임성근 사표 안돼…VIP한테 얘기” 이종호 녹취록 공개 군·경찰 인사개입 정황도…이종호 “VIP는 김계환” 주장 공수처, 김건희 여사 등에 대한 구명로비 실체, 경로 수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컨트롤타워'로 지목된 인물이 채 상병 순직 수사외압 의혹의 '키맨'으로 떠올랐다. 주가조작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명로비를 암시하며 "VIP"를 지칭하는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파장은 확산하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과 수사외압 의혹의 연결고리가 김건희 여사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출발점이 어딘지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확산할 전망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구명로비 실체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10일 공수처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 A 변호사의 대화가 담긴 통화 녹취록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A 변호사는 이 사건 공익제보자로 '해병대 골프 모임' 의혹이 제기된 '멋쟁해병' 카카오톡 대화방 참가자 5명 중 한 명이다.
이종호, VIP 언급하며 "임성근에 사표 내지 말라 해"
녹취록에는 도이치모터스 2차 주가조작 사건의 컨트롤타워로 지목된 이 전 대표가 A 변호사에게 'VIP'를 언급하며 임 전 사단장 구명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다.
MBC와 JTBC에 따르면, 지난해 8월9일 이 전 대표는 A 변호사와 4분13초간 통화했다. A 변호사가 "선배님, 일전에 우리 해병대 가기로 한 거 그 사단장 난리 났대요"라고 하자 이 전 대표는 "임성근이? 임 사단장이 사표 낸다고 B가(전 청와대 경호처 직원) 그래가지고 내가 절대 사표내지 마라, 내가 VIP한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고 얘기한다.
이 전 대표는 올해 3월4일 통화에서도 자신이 임 전 사단장 거취에 개입했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A 변호사가 "임 전 사단장이 채 상병 순직 사건에 책임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이 전 대표는 "그러니까 쓸데없이 내가 거기 개입 돼가지고, (임 전 사단장이) 사표 낸다고 그럴 때 내라 그럴걸"이라고 토로했다.
구명로비 정황을 드러낸 이 전 대표는 군과 경찰 인사개입 취지의 발언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8월 통화에서 이 전 대표는 당시 소장(별 2개)이었던 임 전 사단장을 중장(별 3개)으로 진급시켜줄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원래 그거 별 3개 달아주려고 했던 거잖아. 그래서 내가 VIP한테 얘기할 테니까 사표 내지 마라, 왜 그러냐면 이번에 아마 내년쯤 발표할 거거든. 해병대 별 4개 만들 거거든"이라고 말했다.
해병대 최고위직인 사령관의 계급은 중장이다. 이 전 대표의 발언은 만일 해병대에 대장(별 4개) 자리를 만들면 소장인 임 전 사단장의 진급도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해병대 사령관을 4성 장군으로 진급시켜 해병대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이 전 대표가 언급한 4월, 대통령실과 군이 이 같은 안을 실제로 검토·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별 2개 달아줄 듯" 경찰 인사 개입 정황도
이 전 대표는 자신이 경찰 인사에 관여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 전 대표는 당시 경무관인 경찰 인사 C씨를 언급하며 "오늘 C것도 연락 와가지고 C것도 저녁때 되면 연락 올 거야"라고 말한다. A 변호사가 C의 정체를 묻자 이 전 대표는 실명을 언급하며 "○○○ 서울 치안감. 별 2개 다는 거. 전화 오는데 별 2개 달아줄 것 같아. 우리가 그 정도는 주변에 데리고 있어야지"라고 설명한다.
이는 이 전 대표가 '어딘가'에 C 경무관의 승진을 청탁했고, 관련한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해당 경무관은 치안감으로 승진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결고리는 김건희?…VIP 실체 규명 나선 공수처 "모든 내용 살펴본다"
이 전 대표가 통화에서 임 전 사단장의 구명로비가 있었다고 스스로 밝힌 데다, VIP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실체 규명을 위한 수사가 불가피 한 상황이다.
특히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이 전 대표와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는 김건희 여사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 2차 주가조작 사건을 주도했고, 그가 운영한 블랙펄인베스트에서 김 여사 명의의 계좌 2개를 시세조종에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1심 재판에서 이 전 대표도 김 여사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라고 진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대표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인정하지 않는 김 여사가 이 전 대표와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면 그 자체로 논란이 될 수 있다. 만일 이 전 대표가 김 여사나 대통령실을 통해 구명 로비를 벌인 흔적이 드러난다면 수사는 용산을 향해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
공수처는 이 전 대표가 언급한 VIP 실체를 확인하는 한편 구명 청탁이 실제로 있었는 지 등을 다각도로 수사할 전망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수사기관은 의혹이 제기된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확인해보고 뺄 것과 넣을 것을 구분해 공적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수사팀이 청문회 때 나온 얘기부터 일부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내용을 살펴보고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호 "VIP는 김계환 사령관"…野 "몸통은 尹 부부"
이 전 대표는 A 변호사가 제출한 녹취록이 '짜깁기' 됐다며 구명로비 등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언급한 'VIP'는 김 여사가 아닌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라고 주장했다.
녹취록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격해지고 있다. 야당은 녹취록을 윤 대통령과 김 여사 개입을 밝힐 '스모킹 건'으로 규정했고, 여당은 A 변호사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번 녹취록과 관련해 "사실이라면 (임 전 사단장) 규명 로비 창구가 김 여사일 것이란 점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라며 "사건의 몸통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라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임성근 한 명을 구하려 물불 가리지 않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며 "도둑이 제 발 저리니 국민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한 것 아니겠나.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해병대원 특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말했다.
A 변호사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변호하며 '1인 다역 공작'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던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이 전 대표가 대통령 부부에게 접근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며 "허풍을 떤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이씨 본인도 구명 운동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지 않았나. 임 전 사단장도 이 씨를 모른다고 했고, 이씨도 (임 전 사단장을) 모른다고 그랬다"며 "공수처 수사에서 내 주장과 다름없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