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의 기록적 패배, ‘정권심판론’이 결정했다 [최병천의 인사이트]
이전까지 ‘정권심판론’ 작동한 총선 단 한 번뿐…나머지는 모두 與 승리 ‘반성과 혁신’ 통한 중도 확장 못 한 국힘, 패배 자초
4·10 총선이 끝났다. 4월10일 오후 6시 방송 3사 출구조사가 공개됐다. 방송 3사가 예측한 최소~최대 의석은 충격 그 자체였다. 예상 의석의 중간값을 구해 보면 민주당 189.2석, 국민의힘 93.5석이었다.
최종 개표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의석이 100석 미만으로 결정된다면,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된다. 범야권 의석 합계가 200석이 될 경우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되고,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의결이 가능해지고,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의결도 가능해진다. 국정 운영의 권한이 국회로 완전히 넘어가는 상황이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하야 국면’이 열리는 셈이다.
죽다 살아난 국민의힘, 최악의 상황 겨우 모면
그러나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국민의힘 의석은 100석을 넘게 된다. 최종 개표 결과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 합계는 175석,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 합계는 108석, 조국혁신당 12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이 됐다. 집권여당이 108석(36%)을 얻은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여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다. 국민은 집권여당과 윤석열 정부를 준엄하게 심판했다. 그렇더라도 국민의힘이 100석 미만인 상황과 비교하면, 국민의힘은 ‘죽다 살아났고’, 민주당은 ‘대통령을 하야시킬 뻔한’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은 왜 참패했는가? 결과적으로 ‘정권심판론’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대 총선 결과를 보면, 정권심판론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작동하는 무소불위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양당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4년 총선부터다. 그 이전까지는 지역주의에 기반한 다당제가 중심이었다. 양당제 기반 총선으로 국한하면 2004년, 2008년, 2012년, 2016년, 2020년 총선까지 총 다섯 번의 총선이 있었다. 이 중에서 ‘야당의 정권심판론’이 작동한 경우는 2016년 총선이 유일하다. 나머지 네 번의 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이 승리했다. 두 번은 민주당 계열(2004년, 2020년)이 승리했고, 두 번은 국민의힘 계열(2008년, 2012년)이 승리했다.
비율로 표현하면 정권심판론이 작동한 선거는 20%(1/5회)다. 정권심판론이 작동하지 않은 선거가 오히려 80%(4/5회)다. ‘정권심판론’이 작동하지 않았던 적이 더 많았음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질문은 왜 하필 이번에는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는지 여부다. 왜 하필 2024년 총선에는 ‘정권심판론’이 작동했던 것일까?
4·10 총선은 크게 4개의 국면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제1 국면은 한동훈 비대위 체제의 등장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12월26일 수락연설을 했다. ‘보수 결집’을 통해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했다. 제2 국면은 ‘윤(尹)-한(韓) 갈등’ 이후다. 1월말부터 2월 중순까지다. 중도층 일부가 반응하며 국민의힘 지지율이 추가 상승했다.
제3 국면은 민주당의 ‘비명횡사 공천’ 국면이다. 2월14일 이재명 대표는 ‘새 술, 새 부대론’을 주장한다. 2월20일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 통보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고, 2월27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컷오프된다. 그렇게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을 앞서는 조사 결과가 많아지고, 의대 정원 확대 정책과 맞물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도 오른다. 민주당의 총선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던 시점이다.
제4 국면은 조국혁신당 등장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출국 논란이 불거진 시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 2월25일 영입인재 1호로 신장식 변호사를 발표했다. 3월3일 ‘조국혁신당’ 이름으로 창당대회를 했다.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전략을 공개했고, 지지율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민주당의 전통 지지층인 40·50대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오른다. 그러나 3월말이 되면서 이념 성향을 ‘중도’라고 밝힌 유권자들이 꼽는 비례대표 지지 1위 정당을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반윤-비명 중도 성향 유권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제4 국면의 다른 한 축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출국 논란이다. 3월10일경 이종섭 호주대사는 출국한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수해 과정에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아 죽게 된 채 아무개 상병 사망 사고에 대한 피의자 신분이었다. ‘도피성 출국’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커진다. 결국 3월20일 이종섭 호주대사는 귀국한다.
이종섭 호주대사 출국 논란은 윤석열 대통령의 재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조국혁신당 등장과 지민비조 전략은 ‘반윤 통일전선’ 구축을 의미했다. 3월 중순경을 기점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오르고, 국민의힘 지지율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민주당 지역구 후보들의 지지율도 오르기 시작했다. ‘정권심판론’이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정권심판론’ 구도에 “더 잘하겠다” 대신 “상대도 문제”로 대응
국민의힘은 어떻게 하면 ‘정권심판론’을 피할 수 있었을까? 2004년 이후 실시된 다섯 번의 총선을 보면, 정권심판론이 선거 때마다 반드시 작동했던 것은 아니다. 작동하지 않기 위한 핵심 조건은 ‘반성과 혁신’을 통한 중도 확장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등장했을 때 국민의힘 쪽 사람들은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같은 역할을 기대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스러운’ 비대위원을 영입하고, ‘민주당스러운’ 정강·정책을 채택하며 중도 확장에 성공했다. 2012년은 이명박 정부 임기 5년 차였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자체가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후보였다. 원내 세력도 두터웠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내걸며 정강·정책을 바꿔버렸다.
반면 2024년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과는 환경적 조건이 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가 3년 이상 남았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민의힘 비대위 체제는 애초부터 윤석열-한동훈의 ‘2인 3각 달리기 대회’ 같은 것이었다. 둘이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언제든 정권심판론이 재점화될 구조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여권은 ‘반성과 혁신’이 없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런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권심판론에 대해 “더 잘하겠다” 대신 “상대도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반성과 혁신은 후퇴가 아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 그런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던 여당이다. 그렇게 중도 확장은 없었고, 정권심판론은 선거 전체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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