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 반대말은 ‘관계’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중독 숨기지 않도록, 지하로 숨어버리지 않게 하는 게 치료의 시작 중독자를 범죄자화하고 사회적 매장 반복하면 마약 근절할 수 없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어언 1년이 흘렀다. 시작은 몽땅 쓸어버릴 기세였으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마약을 생산·유통하는 것으로 막대한 돈을 버는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방식은 영화 속에서나 있는 과거가 돼버렸고, 현실에서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마약 유포의 세계가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말 그대로 향정신성 약물을 말하는 것으로 뇌를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렇게 도파민으로 극강의 즐거움을 맛본 뇌는 자극의 수치를 자꾸 올려 중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환각과 각성제 역할을 하는 천연에서 얻는 아편·코카인 같은 마약성 가공 물질과 엑스터시나 펜타닐 같은 합성 물질을 모두 마약이라 칭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약시장은 더 확대되고 정교해졌다. 예전에 마약을 구입하려면 특별한 사람에게 부탁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접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천연마약뿐 아니라 펜타닐 같은 합성마약의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부피는 더욱 작아져 국제우편물로도 받을 수 있다.
대면배달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해 알 필요도 없고, 나이도 묻지 않는다. 누구나 텔레그램과 다크앱 등 온라인으로 마약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결제는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하고 동시다발로 마약을 배달하는 데다, 심지어 입금한 지 1시간 안에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세태는 온라인 사용에 능숙한 청소년들이 더욱 마약중독의 위험에 빠질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10대 청소년 마약중독자 급증
우리나라 법무부가 마약류 범죄백서에서 발표한 국내 마약류 사범은 2022년 1만8395명이었고, 2023년은 상반기만 1만2700여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그뿐 아니라 예전에는 유명인이나 재벌, 권력층 자제의 일탈이었다면 현재는 일반 청소년들까지 마약을 일상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예전에는 40대가 주류였다면 마약사범의 연령이 30대 이하로 점점 낮아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10대 청소년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은 2022년 294명, 2023년에는 상반기에만 659명으로 124% 증가했다.
마약류의 암수범죄 비율은 일반범죄의 29배라고 할 만큼 높기 때문에 실제로 마약을 접해본 청소년 수는 1만4000명, 투약경험자 전체 수는 100만 명이 넘을 거란 추산이 가능하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강남 학원가에 마약성 음료를 정신이 명료해지는 약이라며 다수의 청소년에게 마시게 하고는 학부모들을 협박해 돈을 요구하는 경악할 사건도 있었고, 일부 여자 청소년 사이에는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며 ‘나비약’이란 마약이 유행처럼 돌고 있기도 하다.
환각을 일으키는 이 나비약 중독은 필로폰으로 쉽게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요즘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합성마약 ‘펜타닐’이 더욱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펜타닐은 합성아편류로 2mg만으로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치사율이 높은 마약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좀비처럼 변한 마약중독자들은 거의가 값싼 펜타닐 중독자들이라고 한다. 미국 정부의 느슨한 대응이 화를 불렀다.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내용으로는 외국에서의 마약류 국내 유입을 막고, 국내의 의학용 마약류 오남용을 방지하며, 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도와 종국에는 마약을 끊도록 하는 데 있다. 국내로 유입되는 마약류 차단을 위해 여행객의 소지화물을 검색하고 전신스캔검색 및 우편 등 국제화물의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 병원에서 의학용으로 사용되는 마약류의 타 병원 처방 및 투약 이력을 의료진이 확인하도록 했다. 또 환자에게는 건강보험을 적용해 치료를 돕기로 했으며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판매한 경우엔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과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마약중독자를 치료하고 재활하도록 도울 수 있는 기관은 10여 곳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곳이 태반인데, 정부는 권역별 마약중독 치료병원을 25곳으로 늘리고,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고 치료병원에 대한 보상을 개선하는 등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의 이번 정책은 과거 ‘처벌 위주’에서 ‘단속·관리·치료’로 방향을 틀었다는 데 더욱 의미가 있다. 20여 년 전에 필자는 시드니 도심을 걷던 중 교회 옆 작은 부스에서 원하는 사람에게 봉투에 싼 주사기와 마약을 주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마약을 무료로 주는 데다 받아가는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적지도 않는다. 이유를 묻는 필자에게 그 관계자는 대답했다. “마약을 음성화하면 중독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비싼 값에 마약을 구입하게 되고 음지로 숨는다. 그게 더 위험하다. 마약을 무료로 받으면서 단체와 신뢰를 쌓고, 그러다 보면 마약중독자들의 재활 자조모임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질병 걸린 환자로 인식해야
이렇게 무엇보다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중독을 숨기지 않도록, 지하로 숨어버리지 않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다. 생산자와 공급자는 엄한 처벌을 해야 하지만, 약물중독자들을 범죄화하고 사회에서 매장하는 일이 반복되면 그들은 숨어서 계속 마약을 할 수밖에 없다. 마약에서의 회복 과정이 양지화되고, 마약중독에서 벗어나 경제적으로도 자립하는 많은 사례를 대중에게 보여줘야 더 많은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마약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마약중독자의 치료와 재활을 돕기 위해 ‘약물법정(Drug Court)’을 전국 300여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 외 의료인, 보호관찰관이 모여 마약사범을 대상으로 9~18개월 동안 치료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일본은 ‘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약중독 치료재활센터)’라는, 회복된 약물중독자가 직접 운영하며 마약중독자의 재활과 사회 복귀를 돕는 민간센터를 전국에 총 95곳 운영하고 있다.
결국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마약중독자 치료와 재활, 사회 복귀를 위해 지자체와 민간 자조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마약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재활센터가 남양주에 하나 있는데, 일본과 달리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어 자급자족으로 운영되며, 입소자가 월 40만원씩 부담하는 형편이다. 그들의 재활 의지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데 정부의 경제적·구조적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재활이 가능한 자조집단 커뮤니티 안에 오래 머무르면서 단약하고 서로 응원을 주고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입을 모은다. 중독의 반대말은 ‘관계’라고 할 정도로 어떤 중독이든 관계가 끊어진 고립과 외로움, 지루함, 희망 없음이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자신을 믿어주는 인간관계를 많이 가질수록 중독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한 청소년과 국민에게 마약중독과 그 과정을 제대로 알리고 경계하는 구체적인 교육과 캠페인을 널리 펼쳐야 한다. 친구들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시작하고 언제든 자력으로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약은 전염병처럼 퍼진다. 마약중독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질병에 걸린 환자라고 생각하고 치료와 재활에 더욱 힘을 쏟을 때, 회복자를 격려하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