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세 명의 손님 참혹하게 숨진 두 여인
[정락인의 사건추적]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울산광역시 중구 옥교동(현 중앙동)은 울산 상권의 중심지였다. 특히 유흥업소가 많아 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뤘다. 2001년 7월3일 저녁 7시쯤 옥교동의 한 5층 건물 지하에 있는 단란주점 ‘둥지’ 간판에 불이 켜졌다. 주인 A씨(여·41)는 평소처럼 시장에 들러 안줏거리를 장만해 가게로 들어왔다. 이 주점은 중앙홀 한가운데에 직사각형 테이블이 한 개 있고, 홀 안쪽에 소형 원형 테이블 한 개가 배치돼 있었다. 벽면에는 룸 여섯 개가 나란히 이어진 구조였다.
오후 9시30분쯤 A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가끔씩 나와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당을 받아가던 B씨(여·41)였다. 그는 손님이 많으면 일을 도우러 나가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일손이 달리던 차에 A씨는 반갑게 “빨리 나오라”고 맞장구를 쳤다. 오후 10시쯤 B씨가 가게에 나와 두 사람은 주방과 룸을 오가며 바쁘게 손님을 맞았다.
7월4일 오전 1시쯤, 50대 중년 남성 네 명이 주점에 들어왔다. 이들은 중앙홀에 자리 잡고 앉았다. 30분이 지나자 이번에는 20~30대로 보이는 남성 세 명이 찾아와 룸으로 들어갔다. B씨는 메뉴판을 들고 룸에 들어가 주문을 받았다. 오전 1시50분쯤 술을 마시던 중년 남성들은 남은 술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범행에 쓰인 살해도구도 여러 종류
주점 건물 2층에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주인 C씨는 TV를 보고 있다가 건물 1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1층 계단에 소변을 보는 취객이 많았는데 C씨는 ‘누가 또 오줌을 싸나’ 하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건물 입구에 남성 세 명이 서 있다가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C씨는 담배를 피우려고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지하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들려왔다. C씨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하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그리고 주점 문을 여는 순간 충격적인 상황을 목격한다. 중앙홀 테이블 옆에는 주인 A씨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뒤쪽 원형 테이블과 룸 사이에서는 종업원 B씨가 천장을 보고 누운 상태로 발견됐는데 아직 의식이 남아 있었다. 그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두 번 정도 말하고는 의식을 잃었다.
B씨는 복부를 칼에 찔린 채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내장이 밖으로 나올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C씨는 살인 사건이라고 보고 112와 119구급대에 신고했다. 이때가 오전 2시50분쯤이었다. 그는 집에 있는 가족이 걱정돼 2층으로 올라가 아내에게 “주점에서 살인 사건이 났으니 문단속을 하라”고 당부하고 다시 주점으로 내려왔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가 두 사람의 맥박을 짚어보니 A씨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B씨는 아직 숨이 붙어 있어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얼마 후 숨졌다. 부검 결과 두 사람의 사망원인은 날카로운 물체에 찔린 상처에서 과다 출혈이 발생해 사망한 ‘실혈사’였다. A씨는 배와 머리 등 5곳, B씨는 배와 가슴 등 4곳을 칼에 찔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들을 살해하는 데 사용된 흉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주인 A씨는 한쪽은 둥글고 한쪽은 날카로운 형태의 상처가 있는 반면 종업원 B씨는 양쪽 모두 날카로운 형태의 흉기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군용 대검 같은 양날 칼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A씨의 옆구리 쪽에는 내부 장기가 밖으로 나온 손상이 보였다. 이러한 넓은 형태의 할창이 나오려면 톱니가 있는 칼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 사람의 살해도구가 각각 다르고 칼도 외날 칼, 양날 칼, 톱니 칼 등 세 종류로 파악됐다. 둔기에 의한 상처도 있었다. A씨 눈썹 주위에 둥근 곡선 모양의 상처가 있었는데 망치로 맞았을 때와 비슷했다. B씨도 이마에는 찰과상, 두피에는 둔기에 의한 손상이 있었다.
경찰은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현장 감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범행도구인 흉기나 둔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범인이 흉기를 들고 주점을 빠져나간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중앙홀과 룸에서 지문을 채취했는데 이상하게도 깨끗했다. 홀 가운데 기둥과 테이블에서만 지문이 나왔는데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맥주컵과 맥주병은 결로 현상으로 물방울이 생겨 흘러내리는 바람에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주인 A씨가 맥주병과 술잔을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냉동실에 있던 병이나 잔을 손님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얼마 후 녹으면서 물방울이 생기고 이게 흘러내리면서 지문을 씻어내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범인의 지문은 술병과 술잔 외에도 탁자 등 곳곳에 남겨져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경찰도 이를 염두에 두고 최신 기법을 동원해 주점 안을 정밀 감식했다. 역시 깨끗했다. 범인이 범행 후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는 폐쇄회로(CC)TV 설치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지 않은 때였다. 해당 건물은 물론 주점에도 CCTV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건물 맞은편 전파상에 설치된 CCTV가 주점 쪽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에 범인의 모습이 찍혔다면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CCTV는 전파상 셔터 안에 설치돼 있었고, 셔터가 내려지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범인이 노린 것 분명치 않아
범행이 일어난 시간을 통해서도 범인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종업원 B씨는 7월4일 오전 2시17분에서 2시21분까지 약 4분 동안 지인과 전화통화를 했다. B씨가 이때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중국집 주인 C씨가 칼에 찔린 두 사람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시각이 2시52분이다. 범행은 넉넉잡아 31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당시 주점에 남아 있던 손님은 누구일까.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지인과 통화한 여종업원 B씨의 대화 내용이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B씨는 지인에게 “손님 한 테이블 받고 주인하고 둘이 조용히 있는데 올 손님이 또 있어 기다리고 있고, 손님을 받아야 될지 안 받아야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손님 한 테이블 받고’라는 뉘앙스가 손님이 나간 상태인지 현재 주점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다.
하지만 중국집 주인 C씨는 “남성 세 명이 건물을 빠져나간 뒤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것에 비춰보면 ‘손님 한 테이블 받고’는 현재 손님이 있다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이들은 오전 1시30분쯤 주점에 들어왔던 20~30대 남성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들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다.
이 사건은 범행 목적이 불분명하다. 범인이 노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단정하기가 어렵다. 우선 강도로 보기에는 치밀하지가 않다. 카운터에는 뒤진 흔적이 있었다. 이곳에 얼마의 현금이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용의자 특정 못해 수사 답보 상태
문제는 A씨의 주머니에 있던 현금 136만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강도가 목적이었다면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가져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현금을 왜 그대로 두고 갔는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범인이 A씨의 주머니에 많은 현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종업원 B씨의 바지 단추가 열리고 허리띠가 풀어져 있는 것을 근거로 ‘성범죄’가 목적이라고 보고 있다. 당시 B씨는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옷이 벗겨진 흔적은 없었다. 범인이 B씨의 옷을 벗겼다가 다시 입혔다고 볼 수도 없었다.
정액검사 결과 B씨의 몸에서는 ‘정액 반응’이 있었으나 혈흔과 섞이면서 정확한 분석은 불가능했다. 보통 정액의 생존기간이 3일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B씨가 사건 이전에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맺은 것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B씨의 바지 단추가 열리고 허리띠가 풀린 것만 가지고 범행 목적을 ‘성범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범행은 치밀하게 계획됐다기보다는 우발적인 상황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범인들이 B씨를 성추행이나 희롱하려다가 실랑이가 벌어졌고, 흉기를 꺼내 위협하자 휴대전화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고, 이걸 막는 과정에서 살인으로 이어졌으며, 범행 후 카운터를 뒤져 현금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경찰 수사는 더 이상의 진전 없이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시민의 제보가 유일한 희망이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범인은 최소 2명 이상이다.
여러 정황상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은 마지막 손님인 세 명의 남성들이다. 최초 목격자의 증언 외에도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여러 가지인 점, 여기에 둔기까지 사용한 점, 흉기를 휘두른 자와 카운터를 뒤진 자가 각각 다른 점으로 볼 때 범인은 혼자가 아닌 최소 2명 이상이다.
2. 범인은 조폭이나 우범자들이다.
범행 당시 범인들은 각자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이 평소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걸 보면 범인들은 처음부터 강도를 계획하고 단란주점에 들어왔다가 우발적인 상황에 맞닥뜨리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었을 수 있다. 또는 폭력조직에 몸담고 있는 조직원들이거나 전과가 있는 우범자일 가능성도 있다. 초범으로 보기에는 범행 수법이 너무 잔인한 것도 조폭이나 우범자에 무게가 실린다.
3. 범인은 혈액형 AB형의 남자다.
범인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중요한 단서 하나를 남겼다. 경찰은 현장 감식을 하면서 주점 입구 아래쪽 계단에서 두 방울의 혈흔을 발견했다. 혈액형은 AB형으로 나왔다. 주점 주인 A씨의 혈액형은 B형, 종업원 B씨는 A형이다. 이 핏방울이 두 사람의 것은 아닌 게 확실하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범인이 흘린 핏방울일 가능성이 높다. 범행 과정에서 범인도 상처를 입었고, 단란주점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4. 목격자들이 본 용의자들의 인상착의
세 명의 남성들은 단란주점을 나와 이동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목격됐다. 최초 목격자인 중국집 주인 C씨는 셋 중 한 명의 뒷모습은 머리가 길었고, 또 한 명은 스포츠형 머리였으며, 한 명은 뒷모습으로 볼 때 얼굴이 좀 크다고 증언했다. 두 번째 목격자는 근처 다른 주점의 여종업원이다. 그도 용의자 중 한 명은 20대로 보였으며 165cm의 키에 스포츠형 머리를 했다고 진술했다.
세 번째는 택시기사다. 주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들을 태웠고, 목적지가 ‘울산역’이라고 했다. 그러다 속이 안 좋다며 중간에서 내렸다. 택시기사는 이들의 인상착의에 대해 한 명은 20대 후반으로 스포츠형 머리에 험상궂은 인상이었고, 체형은 뚱뚱한 편이라고 했다. 다른 한 명은 20대 후반에 호리호리한 체격, 보통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이 남성은 울산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 명은 20대 후반에 호리호리한 편이고 신장은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