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성수동’을 바라보는 편치 않은 시선
성수동으로 전파된 젠트리피케이션
성수동을 두고 ‘뜨고 있는 동네’ ‘요즘 가장 핫한 곳’이란 이야길 들은 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그간 실감을 못 하다가 지난 추석 연휴에 성수동 골목길을 순례(?)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10년 전인가, 서울숲 가까이 당시 분양하는 아파트에 운 좋게 당첨되어 성수동 주민이 되었다. 성수대교를 사이에 두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하니, 주변 친지들 반응이 다채로웠다. ‘성동구는 서울대 합격생 수가 서울 소재 고등학교 중 최하위권이래요(그런데 왜 이사를 가시는데요?)’라는 걱정 어린 조언도 있었고, ‘성수동이 뒷구정동이라고 불리는 건 아세요?’라는 농담도 들었으며, ‘60년대식 공장지대부터 21세기식 오피스 풍경까지 공존하는 곳’이란 전문가적 견해와 더불어 ‘향후 전망이 괜찮을 것’이란 위로도 받았다.
그랬었는데, 개인적 사정으로 3년 반 정도 성수동을 떠났다가 올여름 폭염을 뚫고 다시 돌아온 성수동은 예전의 그 성수동이 아니었다. 물론 곳곳에 개성 넘치는 커피숍과 참신한 스토리를 지닌 작은 가게들이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는 소식은 간간이 접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 정도가 아니라 ‘고급진 취향’을 자랑하는 ‘압구정댁’들이 성수동으로 진출해 각종 모임을 갖는다는데야,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호기심까지 발동하여 성수동 골목길 탐색에 나섰다.
출발 지점은 2년 전 《백종원의 3대 천왕》 출연 덕분에 평소에도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감자탕집 앞 골목을 택했다. 천천히 걷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뜬금없이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가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곳은 예외 없이 제법 많은 손님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떡집을 지나 모퉁이 중국집을 끼고 골목길로 들어서니 성수동에서 두 번째로 핫하다는 곳, 어른들의 놀이터가 나타났다.
주변은 분명 저층 연립주택가인데, 그곳은 크리스마스트리보다 더욱 화사한 장식에 쿵쿵 댄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전엔 이 자리가 공장터였음을 굳이 숨기지 않은 채, 넓은 공간에 여유롭게 좌석을 배치하고 빵과 음료를 팔고 있었는데, 카페라테 1잔에 6000원, 진한 치즈케이크 1조각이 7000원. 공장 마당의 옛 모습을 적당히 인테리어로 활용해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변신시킨 것은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삶의 치열한 현장이었던 곳이 빈티지풍이란 이름하에 소비되고 있다 생각하니 순간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했다.
그곳을 돌아 나와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끼고 걷다 보니 바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국적 분위기가 물씬한 맥줏집과 마주쳤다. 출입문 장식부터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도록 꾸민 솜씨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것도 잠시, 초등학교 앞에 주류를 파는 상점까지 진출한 현실 앞에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솔직히는 어떻게 학교 바로 앞에 주류사업허가를 받았는지 의문이다).
이제 시작 단계에 있는 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심 인근의 낙후된 지역에 고급 상권이 새로이 형성되면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앞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는 건 어쩌면 기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홍대앞,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에서 이미 반복적으로 나타났듯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더욱 진행되면 높은 임대료로 인해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대규모 자본의 위력에 침식당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지금쯤이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부정적 폐해를 예방하고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다각도로 구비할 만도 한데,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는 않을까 하여 성수동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