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특별자치시 세종시의 변화는 ‘현재진행형’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⑩ 세종시 “더 민주적으로, 더 평등하게…”
2012년 한국 첫 특별자치시(市)가 출범했다. 세종시라는 도시다. 세종시엔 시, 군, 구와 같은 기초자치단체가 없다는 점이 독특하다. 도시민들을 부양하게 위해서 새로운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짓고, 공원을 만드는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도시는 온갖 인공물의 집합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는 없었던 도시가 이제부터 생긴다고 선포되는 일은 꽤 생경했다. 아무래도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드는 일이다 보니, 도시의 범위나 지위를 정하는 과정도 꽤 험난했었다. 가장 쟁점이 됐었던 것은 세종시를 정부 직할의 특별시로 만들지, 아니면 충청남도 산하의 도시로 규정할지였다. 애초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큰 비전을 가지고 수도를 옮기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일인 만큼, 특별자치시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우세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세종시에 처음 가본 건 2013년으로, 첫 인상은 그저 ‘황량하다’일 뿐이었다. “세종시에서 편의점에 가려면 최소한 차를 타고 15분을 나가야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던 때였다. 당시 인구 12만 명이었던 세종시는 올해 3월, 25만 명을 넘어서며 목표 인구수인 50만 명의 절반을 달성했다. 게다가 세종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많이 들리고 있는 요즘이다. 교육환경도 좋고, 주거환경도 만족이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상권도 점차 더 활성화될 거라는 기대감도 있는 분위기다.
세종시는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기획됐다. 정확히는 세종시 내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어쨌거나 세종시라고 하면 정부기관들이 모여 있는, 행정의 도시라는 인상이 가장 강하다. 중앙행정기관 40개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했고, 1만 5000여 명의 공무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세종시의 상징과도 같은 정부세종청사는 18개의 건물이 모두 연결되어 그 길이가 3.6㎞에 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사의 옥상정원은 지난해 5월에 세계 최대의 옥상정원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옥상정원에 가기 위해서는 미리 방문신청을 해야 한다. 하루에 두 번, 회당 선착순 50명까지만이다. 50명이면 충분한 듯싶지만, 단체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금세 마감이 된다. 필자가 원래 가려고 했던 시간도 50명 단체방문객이 있어서 할 수 없이 다른 시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넓은 옥상정원이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공간은 1㎞ 남짓에 불과했다.
정부 청사 내 세계 최대의 옥상정원
3월말의 옥상정원은 봄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한쪽엔 심은 지 얼마 안 된, 꽃대조차 채 올라오지 않은 튤립이 가득했고, 열매가 열리는 유실수를 심어서 터널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매년 만만치 않은 비용이 옥상정원 유지를 위해 사용될 듯했다. 방문객 안내를 맡은 직원이 옥상정원을 만든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건물의 단열효과를 높이고 청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산책을 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란다.
세종시에는 둘레길도 있고, 녹지공간도 많이 조성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호수공원도 있다. 다른 어떤 대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자랑한다. 때문에 시민들이 여가를 보낼 장소가 부족한 게 아니다. 정부청사의 보안을 위해서 옥상정원을 전면 개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다만 이곳에서 시민들은 주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부청사를 홍보하는 영상물이나 팸플릿에서는 이 옥상정원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사실을 계속 강조하지만, 그게 대체 왜 중요한 것일까. 시민들은 그 옥상정원의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데 말이다.
세종시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도시구조를 만들고자 했다. 세종시의 호수공원은 도시의 중앙을 비움으로써 중앙과 주변이라는 위계를 없애려는 취지였다. 정부청사 건물은 수직으로 높게 올라가지 않고 수평적으로 넓게 펼쳐진 모양새다.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세종시 건설은 일반적인 신도시개발이 아니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인 아젠다를 상징하는 과업이었고, 정부행정기관들이 모여 있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도시를 디자인하는 이념을 세우는 것부터 신중하게 접근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실제로 가본 정부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규모였다. 건물들을 전부 연결함으로써 부서 간에 협력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뜻은 좋으나, 그것이 오히려 청사건물을 하나의 거대한 국가권력의 상징처럼 보이게 했다. 두 건물을 억지로 이어놓은 듯한 구름다리는 너무 길이가 길어서, 과연 저 다리를 건너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세종시는 간선급행버스체계(Bus Rapid Transit, 약칭 BRT)를 도입하는 등 대중교통 시스템에 공을 들였지만, 넓게 펼쳐진 각 청사건물들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먼 거리를 걸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차라리 자가 승용차를 타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정부청사 주변은 드넓은 부지가 자동차로 가득 메워져 있는 광경이 펼쳐져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 친환경적인 도시를 추구하는 세종시인데, 가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푸른 옥상정원으로 덮여 있는 정부청사의 조감도는 분명 세종시가 추구하고자 했던 이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하지만 건물 앞에서 올려다 본 청사건물은 여전히 관료적이고, 각종 꽃과 나무로 매년 새롭게 꾸며지는 옥상정원은 공무원들의 전유물일 뿐이었다. 때문에 정부청사의 옥상정원이 시민에게 개방된다는 건 단지 여가를 보낼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테다. ‘민주’, ‘친환경’, ‘소통과 협력’이라는, 이 시대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총망라하고자 한 세종시의 목표가 이상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