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호 국가정원…‘생태’와 ‘개발’을 품은 순천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③ 전남 순천
필자가 전남 순천시를 처음 방문했던 것은 2009년 가을이었다. 순천의 중심을 관통해 흐르는 동천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은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유명해진 풍덕동, 오천동 일대에 다다랐다. 이곳에서 약 7km를 더 내려가자 세계 5대 습지로 꼽히는 순천만이 나왔다. 말하자면 동천은 순천만 국가정원 부지에서 순천시 구도심을 통과하는 22번 국도와 신도심의 중심가로인 백강로와 만나 순천만으로 흘러들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순천시의 중심에 위치한 봉화산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듯한 구도심과 신도심이 순천만이라는 자연 앞에서 비로소 화합을 이루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구도심과 신도심, 그리고 도시와 자연이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완충지대로서 역할을 기대하는 순천 시민들의 바람을 안고 있었다.
2016년 가을, 꼭 7년 만에 다시 순천을 찾았다. 7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순천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국제 정원박람회를 개최한, 최초의 국가정원을 가진 도시가 돼있었다. 2013년 순천만정원박람회가 끝난 이후 이 장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 자체로서도 성공적인 이벤트로 평가받는 순천만정원박람회의 부지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많은 고민을 한 결과물이 바로 ‘국가정원’이었다.
우리에겐 ‘국가정원’이라는 말이 아직은 낯설다. 그리스와 이집트에서는 왕실 소유의 정원이었던 곳을 국민에게 돌려준 사례가 있고, 영국에는 왕실에 소속돼 있지만 유료로 개방되는 정원이 있다. 식물원(Botanic Garden)을 국가정원의 유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순천만 국가정원은 이런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정원’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정원의 매력은 아무리 작아도 가꾼 사람의 취향과 세계관을 살펴볼 수 있다는데 있다. 음악이나 조각 작품 등 다른 콘텐츠들을 품으며 다양하게 연출될 수도 있다. 도시 속에 녹아들어가 칙칙한 공간을 화사하게 바꾸고, 방문객들에게 아기자기한 정원들을 발견하게 해서 도시를 유람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정원문화가 발달한 영국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정원을 개방하는데, 누구든지 와서 정원을 구경하고 마을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정원 주인이 준비한 다과를 먹으면서 정원을 가꾸는 노하우를 서로 알려주기도 하고 정원을 가꾸는데 필요한 씨앗을 나눠 갖기도 한다. 이렇듯 정원은 삭막한 도시생활 속에서 자연과 사람을 만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보편적이다 못해 지배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순천만정원박람회는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정원문화를 소개하는 시발점으로서 의의를 가진다. 국가정원은 정원박람회가 쏘아올린 신호탄을 이어받아 그 열기를 지속시키고, 일상 속으로 정원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상징적 거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성숙한 정원 문화의 안착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아직 ‘관광지’라는 인상이 강하고 일부 미니어처 테마파크 같은 정원들도 많다. 넓은 면적 탓에 셔틀버스를 탄 채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점도 아쉬운 점이다. 정원의 묘미는 그 장소 내에 머무르면서 천천히 발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원문화에 생소한 사람들에게는 그로서도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의 또 다른 의미는 순천시가 추구하는 가치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바로 ‘생태수도’다. 도시는 성장해야 하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태습지인 순천만은 보존할 필요가 있었다. 이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서 순천만 국가정원은 확장하려는 도시의 에너지를 ‘생태관광’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태관광은 갯벌에서 조개를 잡거나 식물이름을 공부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생태환경의 보존이 개발보다 더 큰 이윤과 만족을 창출해,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이 생태관광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관광객에게 충분한 볼거리, 즐길거리를 주는 동시에 자연환경의 보존까지 성공적으로 해낸 경우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그 어려운 미션을 최초로 달성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지난해 11월 순천만 국가정원 내에 있는 수목원 전망지에 오르니, 저 멀리 고층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반대편 방향에선 무인궤도차 ‘스카이큐브’가 순천만을 향해 달리고 있다.
국가정원에서 사람의 손에 의해 다양하게 각색된 자연을 경험했다면, 이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러 갈 차례다. 순천만의 감동을 온전히 느끼려면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춰 순천만 동사면에 위치한 용산전망대를 오르는 것이 정석이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삶. 그런데도 이렇게 가까운 곳에 넋을 잃고 바라볼 수 있는 천연의 풍경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일몰 후 어두워진 산길도 반딧불이 덕분에 외롭지 않다.
동물서식지 보호나 생물다양성 보전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네 도시인들에겐 실감하기 어려운 말로 전해지곤 한다. 하지만 7년 전 이곳 순천에서 받았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여전히 그대로 있어줘서 고맙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순천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제 겨우 국가정원 ‘1호’다. 전례가 없었던 만큼 신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필요한 때다. ‘국가’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역사적 전통이라든가 국가적 상징을 반영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에 빠지지 말자. 한국만의, 혹은 순천시만의 독특한 정원문화를 이곳에서 마음껏 배우고, 도시를 활기차게 만드는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덕분에 순천만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생기는 셈이다. ‘생태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을 순천시를 기대해본다.